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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ly Nov 17. 2024

[Prologue] 사무실 반면교사 일기

배우고 싶지 않은 면을 가진 사람들의 인생을 상상하여 들여다봅니다.

눈을 다 가리는 큰 뿔테 안경을 낀 여자가 커피를 들고 아직 어둑한 사무실로 들어온다.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불이 켜지고 여자는 자리에 앉아 얇은 에코백에 담긴 무거운 짐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올해로 38살이 된 미혼의 여자는 한 중견 기업의 과장님으로 불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혼자 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과장은 인사 소리에 문을 흘깃 쳐다본다.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인사하며 들어온 대리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업무 준비를 한다. 일찍 와서 조용히 책 좀 읽으려고 했더니 하필 대리도 이른 출근을 해서 내 계획을 다 망쳤다. 저 대리는 왜 일찍 와서 사무실에 나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질 수도 없게 하는 거야? 일도 못하는 게. 대리가 내는 생활 소음에 짜증이 난 과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에코백을 뒤져 이어폰을 꺼내 신경질적으로 두 귀에 꽂는다. 


한 명, 두 명 사무실에 직원이 들어오자 과장은 읽고 있던 책을 덮어 두고, 이어폰을 뺀 후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한다. 따닥, 딱, 따닥. 요란하게 마우스를 클릭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메운다.


"안녕하세요." 오늘 사무실에 첫 출근한 신규 입사자다. 경력자라더니 얼굴을 보니 앳되어 보인다. 

경력은 무슨. 어디 가서 인턴이나 몇 개월하고 왔겠지라고 생각하며 신규 입사자를 흘겨본다. 신규 입사자는 첫 출근에 꽤나 신경 쓴 모양새다. 정장까지는 아니지만 비즈니스 캐주얼에 7cm 정도 되는 하이힐을 신었다. 

내 후임으로 경력직을 뽑는다더니 웬 신입 같은 애가 온 것 같아 내심 짜증 난다. 계속 서있으라고 하기도 뭐 하고 정해진 자리인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퉁명하게 내뱉는다. "여기 앉으세요"


신규 입사자가 온 지 1시간이 지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의도해서 그런 거라기보다 그냥 일이 바빴다. 주변시로 슬쩍 보니까 모니터를 앞에 두고 내부 인트라넷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더 지나자 신규 입사자는 지루해서 못 참겠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과장님, 혹시 신규 입사자 가이드가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오늘 무슨 업무를 하면 될까요?" 


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가이드를 달라고 하지? 나 바쁜 거 안 보이나? 바쁘다고 온몸으로 티를 냈는데도 신규 입사자가 눈치도 없이 말 거는 게 너무 건방지다. 일 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얄밉기도 하고 귀찮은 느낌도 들어 "바쁘니까 메신저로 하세요."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신규 입사자는 기가 죽은 듯 "네"라고 조용히 답했다. 

괜히 통쾌한 느낌이 들던 찰나 "띵~동" 울리는 메신저. 신규 입사자의 메시지다. 


업무를 달라는 내용과 OJT는 언제 가능한지, 본인은 무얼 하면 되는지가 담긴 메시지다. 요즘 애들은 정말 당돌하구나? 선배가 일 시키는 거 기다리고나 있지. 인내심도 없어가지고 쯧.. 

신규 입사자의 메시지를 잠시 접어두고 급하지 않은 업무에 몰두한다. 딸각딸각딸각 몇 분이 지나고 다시 신규 입사자의 메시지를 읽는다. 메신저 하란다고 눈치도 없이 바로 옆자리에서 진짜 메신저를 해? 왠지 마음에 안 드는 신규입사자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옆에 있는데 메신저를 해요?"


신규 입사자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통쾌한 기분이 들어 한 번 더 흘겨보고는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잡고 유독 더 일에 집중하는 척 소리를 냈다. 신규 입사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또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러게. 가만히 있지 왜 내 심기를 거슬리게 해? 



회사 생활을 하며 만났던 사무실 빌런들의 삶을 상상해 소설 형태로 풀어내려 합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속마음은 어땠을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시절의 그들을 이해하고, 이제는 덜 미워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는 미움을 내려두고, 그들이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상상해 보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그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았는지 등에 대해 반추하고 반면교사 삼으려 본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 


앞으로 연재하게 될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허구에 기반한 창작물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 이름, 상황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특정한 인물이나 조직을 의도적으로 연상시키려는 목적이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혹시라도 실존 인물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의 일치임을 알려드립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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