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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Sep 26. 2018

글을 열심히 쓰겠다는 개인적인 다짐

오랜만에 글을 써보기로 다짐했다. 그리하여 무슨 이야기를 털어 놓을까 고민했다. 없었다. 사실 나는 말문이 막혀있는 상태였다. 이 문장 역시 유려하게 보이고 싶어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었다. 더듬더듬 자음과 모음을 조립해 보았다. 머릿속에 웅장한 로봇 설계도가 넘쳐나는데 레고 블록이 적어서 못 만들던 일곱 살 시절이 생각났다. 이제는 레고 따위 원없이 살 수 있었지만 내 안이 텅 비어버렸다. 무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스무살 무렵에는 속에 분노와 사랑이 홍수처럼 불어나 침을 줄줄 흘리며 끝없이 아무말을 했다. 하지만 여름 다음에는 가을이었다. 장마가 그치자 혀가 바짝 말랐다. 깨끗한 조명 아래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명함을 주고 받는 삶. 세계의 체계에 철저히 복무하며 안온한 삶을 연명하다보니 어느새 입이 건조해졌다. 의심은 거세되었고 감정은 표백되었다. 쇠창살에 발길질하기를 포기한 육계 한 마리가 남아있었다.


지난달 바르셀로나에서는 해변에 누워있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바르셀로나에 왜 갔느냐. 나에게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에 가야만하는 동기가 있었느냐. 자문해보니 서서히 쓸쓸해졌다. 그저 보상심리 때문이었다. 일을 했고 친구를 잃었으며 삶이 무미건조해졌으니 돈으로라도 보상을 받고 싶었다. 타인의 사치를 흉내내어 수십 장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자본주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평범한 삶'이란 규격을 스스로 충족하며 동시에 그 '평범한 삶'을 재생산해내니 훌륭한 사회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체제 순응적인 시민.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환영하며 타인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인민들.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타인의 삶을 흉내내며 그게 태초의 자신인 양 꾸준히 포장하다보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건 가려지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다시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김연수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은 투명한 창문이 세계를 그림처럼 담아내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묵묵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게 직업이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밝혀 내야할 하나의 진실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믿고 쓰는 삶이 더욱 아름다울 거라는 확신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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