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교필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승혁 Feb 28. 2019

게임 속에서는 돈을 펑펑 쓸래

'하룬 파로키'의 평행┃당신이 자유롭지 않은 이유

급히 휴가를 썼다. 소파에 젖은 담요처럼 퍼질러 누워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했다. 40만 원.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왕복 항공권 가격이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을 바꾸는데 드는 삯으로 적당한지 가늠해보았다. 아이폰의 매끈한 화면에 인터넷뱅킹을 띄워보았다. 어제 전세 대출 이자가 빠져나갔고 그제 카드 값이 나갔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억지로 가입시킨 보험도 사나흘 뒤면 요금을 청구할 예정이었다. 이 정도면 매달 나가는 돈이니까 특이사항이 아니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달달한 입술로 관대한 지출을 종용했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인 언론인이라서 달콤한 자기기만에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40만 원을 지출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심금을 울리는 그럴싸할 명분이 필요했다.


여행은 고통입니다


결국은 분노가 인간을 행동하게 한다. 지출을 합리화하기 위해 혼란한 뇌를 주억거리는데 돌연 용암 같은 분노가 폭발했다. 아니! 내가! 엉망진창이 된 진탕으로 소 끌려가듯 매일 출근하는데 이 정도 돈이 대수냐! 스카이스캐너에 신용카드 번호를 터치하자마자 항공권이 메일함으로 날아왔다. 안타깝게도 분노의 지출은 틸다 스윈튼의 질문 앞에서 멈췄다. 여행이 영어로 뭐지. 트립 닷컴에서 빈 호텔 방을 검색하자 4박에 50만 원이 넘는 방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식은커녕 와이파이도 없는 방이었다. 호캉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못해도 100만 원은 더 필요했다. 여행이 영어로 뭐냐는 틸다 스윈튼의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트래블(travel), 고통과 고난(travail)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입니다. 나는 취소 위약금 10여만 원을 내고 항공권을 반품했다. 아까운 내 돈. 자본주의가 내린 최고의 고통은 손실이었다.


하룬파로키 전시회 꼭 가세요


목줄을 해서 개집 주위를 벗어날 수 없으면서 나는 자유롭다고 오해했다. 남들보다 목줄이 기니까 비교적 자유로운 게 아니냐며 위스키 뚜껑을 따기도 했다. 방콕을 포기하고 찾아간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게임 캐릭터가 맵 밖으로 나가려고 끊임없이 경계에 부딪는 영상이 전시돼있었다.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 '하룬 파로키(1944~2014)'의 작품 '평행'에는 게임 속 전투기가 맵 밖으로 나가려고 맹렬히 돌진하다가 경계 지점에서 폭발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잡화점의 점원은 가게를 나와 강가로 향하지만 번번이 가게로 돌아와졌다. 경찰 캐릭터는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에 막혀 더 전진할 수 없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캐릭터를 조종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구도 개발자가 만든 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호텔로 가려던 나 역시 투명한 경계에 부딪혀 멈춰 섰다. 지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어떤 개발자가 만든 틀에 갇혔는지 궁금해졌다. 전시관을 나와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현대자동차의 후원 광고판이 붙어있었다. 나는 돈이 없었다.


그러므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바뀌어야만 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충성하겠다는 맹세문은 정확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자유로웠다면 지금 방콕의 리바써야 호텔 수영장에 누워서 땡모반을 마신 뒤 전신 마사지를 받고 있어야 했다. 신문기자도 그만둔 마당에 마포구 상수동의 카페에서 쓸데없는 글이나 지껄일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겨울은 여전히 겨울이었고 꿈꾸는 여름은 저 멀리 40만 원 너머 남국의 수도에 있었다. 자유로웠다면 빨래를 바싹 말릴 수 있는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아야 했다. 자유로웠다면 애당초 출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자유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걸리적거렸다. '자본주의로운 대한민국'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유는 내가 가진 자본의 양이 정했다.


여러분 게임 하면서는 좀 노세요


파로키의 작품을 설명하며 도슨트는 이렇게 말했다. 게임 속 세상은 논리적으로 가장 완벽한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다. 헛헛한 마음에 가만히 팔짱을 끼어보았다. 오크와 엘프가 나오는 판타지 게임부터 외계인과 지구인이 맞붙는 SF 게임까지 플레이어는 돈을 벌어서 물건을 사고 다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고가의 아이템을 사재기해서 투기에 나서고 시세가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가격 방어를 했다. 게임의 배경이 중세든 고대든 미래든 뭐든 자본주의는 영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헬조선의 심즈'란 글이 베스트 유머로 꼽혔다. 게임 캐릭터에게 사법고시(!)를 보게 하고 돈을 모아 넓은 집으로 이사를 시키다가 '내가 왜 게임에서도 이러고 사는가' 자조하는 내용이었다. 게임에서조차 잡화점 주인은 강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볼 수 없었다. 엘프도 외계인도 오크도 인간도 다 출근하고 투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적으로 완벽한 이상은 확실이 이상했다. 사람들은 게임에서조차 박봉과 출퇴근에 시달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게임을 만든다면 캐릭터에게 돈을 펑펑 줄 것이다. 태업을 할수록 경험치가 올라가는 시스템을 개발할 테다. 모든 캐릭터에게 번듯한 집을 주고 투기는 금지한다. 상점 주인과 문지기와 공무원 같은 논플레이어 캐릭터(NPC)는 주 4일 일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쉰다. 멸종 위기에 처한 몹은 국립공원에서 보호한다. 무엇보다도 게임 개발자를 만나면 자본주의 말고 다른 체제를 실험해달라고 요구할 테다. 상상 속 세계에서도 자본주의에 시달리는 건 싫다. 무정부주의도 좋고 사회주의도 좋다. 게임인데 뭐 좀 어쩌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정치인은 거짓말을 침처럼 뱉어댄다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