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피아노 원장님
유치원생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보육 목적으로 월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가는 학원 하나쯤은 다 있을 것이다. 아마 피아노, 태권도 정도일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피아노에 보냈다. 워킹맘인 나는 기본 한 시간 + 내 상황에 따라 좀 더 아이를 봐주는 피아노 학원에 너무 만족했고, 피아노 학원에서는 피아노 말고도 바이올린, 우쿠렐레, 오카리나, 요들, 동요, 장구 등 아이들이 학원에서 할 수 있는 꺼리를 마련함으로써 나는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마침 원장님의 교육 철학이 '악기 하나 평생 친구 만들기'였어서, 내 마음과도 맞아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음악원 겸 보육원으로 열심히 보냈다.
그리고 어느 덧 6년이 지났다.
첫째는 베토벤을 넘보고 있었고, 바이올린도 피아노 학원에서 제일 앞서고 있었다. 둘째도 미도솔솔 미도솔솔 시파파파~ 하는 소나티네를 치고 있다. 나름 가요도 듣기 좋게 치고, 기타도 시작하게 되었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더니, 남들이 보면 내가 음악 전공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할만큼 아이들의 재능 오각형은 음악으로 기울고 있었다. 특이 어릴 때 배우면 input = output은 되니, 해온 시간만큼 발전도 있었던 것이다.
주변 엄마들이 아직도 피아노해? 자기는 거기 VIP네~ 라고 말할 때에도 나는 딱히 어떻게 바꿔야할지 막막해 일단 현재 상태를 고수했다. 큰 아이들 친구는 거의 남은 친구가 없을 정도로 떠났고, 코로나 이후 학업 성취도가 떨어져 많은 부모들이 피아노를 끊고 국/영/수 학원으로 변경하고 있는 판국인데도, 마치 주식 투자 종목을 쉽게 변경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민하다가 그냥 두게 되었다. 피아노 원장님은 이런 나를 '기다려줄 줄 아는 엄마'로 멋지게 포장해주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고, 아이들은 피아노를 더욱 좋아하게 됐으며 자기가 치는 곡에 애착까지 생기게 되었다. 내가 감히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데, 피아니스트감은 아니다. 주변 의견은 두 갈래로 갈린다. 그 정도 배웠으면 됐다파와, 하고 싶어하면 놔둬라파! 참고로 우리 친정 엄마는 그 정도 배웠으면 됐다파이다. 그래서 나는 6학년 때 피아노를 그만쳤다. 그게 불씨가 된 것인지, 하고 싶다면 그냥 두고 싶은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아이의 실력이 나날이 늘어 어느 순간 우리 딸이 치는게 맞나 싶을 만큼 깜짝 놀라는 흐뭇한 경험도 한 몫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원장님의 마지막 펀치
여기서 나의 결정에 피날레를 장식해준 원장님 말씀. 음악을 모르는 엄마들이 5,6년씩 피아노 가르치고는 베토벤, 쇼팽 치면서 날려고 할 때 꼭, 국/영/수 해야한다며 끊는다고... 초등학생 때처럼 주 4-5일 할 것 없다. 주 1회라도 좋으니 자기 마음에 따라 슬픈 날은 리버 플러우 인 유, 기쁜 날 사랑의 인사, 캉캉, 화나는 날은 철도를 치며 자기 마음을 직시하고 음악으로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좋냐는 말씀이었다. 옳구나 싶었다. 물론 재정적인 문제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덧붙여 하시는 말씀이, 꼭 끊어야겠다 싶거든 3개월이라도 먼저 말을 해주면, 내가 옛날에 그거 쳐봤지~ 할 수 있도록 회상할만한 멋진 곡을 가르쳐주신다고...
결국,
나는 아직도 피아노를 끊지 못하고 보내고 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한 번 시작하면 끊을 줄을 몰라서(?) 바이올린, 기타도 하는데, 남들 다 하는 국/영/수 보낼 돈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부족해지면 횟수를 줄이면서 조율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유지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뭘 배우다가도 금방 싫증나서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한데, 더 해보겠다는 아이들을 말리진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악기라는 것이 감성적으로 사춘기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하니, 그런 장점이라도 기대어보고 싶다. 3년 후 쯤, 지금 이 결정에 대해서 어떤 후기를 쓰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