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
학교에서도 성교육은 하지만, 알다시피 남녀 합반 수업에다가 25명의 아이들에게 일률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에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소수 그룹으로 진행하는 사교육을 알아보고 진행하게 되었다.
교육 기관은 나 어릴 적 성교육에 한 획(?)을 그은 구OO님이 이사로 있는 아우성에 의뢰하게 되었다.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만큼, 일정 풀리자마자 예약이 마감된다고 하는데 다행히 평일은 한 자리가 남아 있어서 수월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인원구성은, 6명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아이에게 성교육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친구들에게 참여 의향을 물어보라고 했다. 엄마들이야 쉽지 않은 기회이니 얘기만 하면 누구나 찬성할 것이라 내가 짜면 금방이겠으나, 내가 이렇게 귀찮은 일을 맡은 것은 우리 아이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최대한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여 팀을 구성하였다.
장소는 방문 수업이라 내가 제공을 드려야 했는데, 집도 괜찮다고는 하셨으나 집에는 동생도 있고 좁은 것 같아서 외부 장소를 물색했다. 장소 물색 시 중요한 고려사항은, 여자아이들 5명이 성 이야기를 하면 엄청 시끄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방음시설이 되어 있다는 스터디카페 회의실을 예약했다.
사전 상담에서는, 수업에 꼭 포함시켜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는지 전화통화를 하게 된다.
동영상을 봤다거나, 학교 남자애들이 어떤 말을 한다거나 할 경우 신청한 이유를 자세히 말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성범죄가 무엇인지 궁금해해서 신청했다고 말씀드렸다.
수업 내용은 사춘기와 몸의 변화에서 시작하여, 생리대 종류별로 뜯어보기도 하고, 성관계가 무엇인지, 왜 하는지, 아이들도 할 수 있는지, 왜 안 하는 것이 좋은지, 이성교제는 이렇게, 오픈챗방, 미디어 바로 보기 이런 내용을 담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성교제와 인터넷 세상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주의점이 특히 좋았다.
수업 피드백은 수업 후 20분 정도 수업했던 내용에 대해서 엄마들에게 피드백을 해준다. 어떤 것을 해주면 좋겠다고 조언도 해주시고, 아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다고 공유도 해주신다. 특히 이성 교제에 대해서는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는 세상이라며, 어떻게 건전하게 할지를 같이 얘기해야지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수업 후, 불시에 생리가 시작할 것을 아이들이 은근히 걱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바람막이와 생리대와 속옷을 넣은 파우치를 준비해 주기로 했다.
다음 수업은 중학교 1학년 2학기나, 2학년 2학기 정도를 권장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기본적인 사항을 배웠고, 데이트 폭력이나 온라인 채팅, 스킨십 등 중학생 때는 실제 이성교제 중 맞딱들이는 상황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첫 수업은 아직 야한 영상에 노출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좋다고 하셨다.
내가 청소년 성범죄 피해 뉴스를 접할 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발생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피해자이지 잘못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수업을 신청했고, 다행히 아이도 내용을 잘 이해한 것 같다.
선생님이 피드백에서 하신 말씀 중에,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실망할 것을 가장 많이 두려워한다고 한다. 혼나는 것이 아니라, 실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니... 아이들이 부모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찡~ 울렸다. 그런 심리를 범죄자들이 역 이용하여, 너도 동의해서 한 것이니 이걸 네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속상할지 생각해 보라는 식으로 윤리의식을 압박하여 2차, 3차 가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안정시키고, 다 괜찮다고 다독여 달라고 당부를 하셨다.
나중에 뒤돌아 보면 '풉'하고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 정도만 겪으며 청소년기가 잘 지나가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세상은 모르는 일이니,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어떻게 증거를 남기고 대처해야 하는지 배워놓아서 나쁠 건 없는 것 같다. 정말 필요한 사교육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