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세요
퇴근길, 겨울 삭막한 공원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바닥 분수를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아이들이 어릴 적 바닥 분수에 처음 갔던 기억이 났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한 여름날 분수 나오는 시간에 맞춰 갈아입을 옷과 수건 등을 싸서 부랴부랴 아이들을 데려갔었다. 시원하게 쭉 쭉 뻗어져 나오는 바닥 분수 물줄기를 본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 줄 몰라 한 동안 가만히 하늘로 쭉 솟아오르는 힘찬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수 시간이 30분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내가 아이들을 분수에 넣어보려고 등 떠밀었던,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웠던 기억도 떠 올랐다.
이제는 분수만 보면 물 맞고 싶다고 하는 통에, 못 들어가게 막느라 진땀을 빼야 할 지경이 되었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분수와 친해지는 데는 아이와 분수의 잔잔한 만남이 몇 번 더 필요했었다.
아직도 한 여름 바닥 분수 근처에는 아이를 분수와 빨리 만나게 해 주려는 부모들이, 분수 가까이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와 실랑이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나도 그랬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혀 서둘러 물과 만나게 해 줄 필요가 없더라고 말해주고 싶다.
거대한 물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이미 충분히 분수를 느끼고 만끽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미 주변에 분수를 맞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몰라서 분수로 뛰어들지 않는 건 아닐 거라고... 분수 괴물이 됐건, 분수 물대포가 됐건, 그냥 아이가 느끼는 대로 바라보고, 용기 내어 만지고, 하고 싶은 대로 두면, 그것이 바닥분수에 시간 맞춰 달려온 보람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가까스로 바닥 분수에 밀어 넣은 아이가 차가운 분수 물줄기를 만났을 때, 아이는 일단 '차가움'에 놀라 기겁을 하고 다시 나오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냥 아이를 내버려 뒀다고 생각해 보자. 분수 근처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물보라도 맞을 것이고, 차가움도 느낄 것이고, 그냥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차가운데도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들어가도 되는 건가?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 손을 뻗고, 차가움에 놀라 움츠러들고, 다시 한 참을 쳐다보다가 또 손을 뻗어 만져보고... 들어가 봐도 괜찮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아쉽게도 바닥분수가 끝날 것이다. 그럼 다음에는 좀 더 빨리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경험하면서 아이는 자기한테 필요한 배움을 얻을 것이다.
어디 바닥 분수만 그러하겠는가? 아이가 만나는 모든 세상이 그러하다. 어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첫 만남이 될 것이니, 아이가 혼자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모든 만남의 시간에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자. 기다리기가 힘들다면, 차근차근 설명하느니 그냥 내버려 두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성비를 중요하시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냥 바라만 본다는 것은, 그저 거기 가만히 있다가 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애써 생각하자. 해보고 싶다,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까지 내버려 두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보자.
어느새, 아이는 물안경에 물 담을 통까지 준비해서 더 큰 분수를 찾아 나서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