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부당하게 혼나 본 적이 있나요?
우리 동네에는 편의점과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나란히 있다. 원래는 편의점만 있었는데 워낙 학교 앞이다 보니 무인 아이스크림점도 들어섰다. 방앗간에는 종일 초등 참새들이 엄청나게 들락날락한다. 그러다가 목격(?)한 장면이다. 아이들 3명이 주눅 들어있고, 편의점 사장님인지 매니저인지 아이들을 야단치고 있었다.
'너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아이스크림 더 싼 것도 있어? 그런 말 하면 남의 가게 망하게 하는 거야. 너네가 책임질 거야?' 대충 이런 말이었다.
상황상, 무인 아이스크림점 가격이 더 싸다고 했나 보다. 그 말을 듣고, 안 그래도 손님 뺏겨 마음이 상한 편의점 주인이 튀어나와 괜한 아이들을 붙잡고 트집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마도 왜 혼나는지도 이유를 모른 채로, 고스란히 편의점 주인의 짜증을 듣고 서서 죄송하다고 했다. 지나가는 부모로서 그게 곱게 보일리가 없다. 저 아이들의 부모는 자기 아이들이 밖에서 이유 없이 욕을 먹은 것을 모를 것이다.
버스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할아버지가 노약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욕을 한다거나, 횡단보도에 급히 뛰어들었다가 운전자의 욕지기를 얻어먹는다거나, 왜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냐고 뭐라고 하며 아이들을 쫓아낸다든가, 별 황당한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나는 그날 저녁 식탁에서 상황 파악(?)에 돌입했다.
너희들은 부당하게 혼난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니?
아이들은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잘못해서 혼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대응 안을 제시했다.
"어른도 사람이라 감정적일 때가 많아서, 그렇게 잘못한 일이 아닌데 과하게 열을 올릴 때가 있어. 모르는 낯선 어른이 길거리나 밖에서 너네 언행을 보고 트집을 잡고 혼 내면 그걸 다 듣고 있지 말고 일단 튀어!"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줄 전혀 몰랐다는 듯이, 아이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는 동시에 아이들 말문이 터졌다.
- 놀이터에서 꼬맹이들과 실랑이 붙으면 어떤 엄마들은 동생한테 양보하라고 강요한 얘기
- 횡단보도에서 운전자가 빵빵 경적을 누르며 소리치며 욕했다는 얘기
- 놀이터에서 중학생 엉아들이 자기한테 욕했다는 얘기
- 내 잘못도 아닌데, 덤터기 쓴 얘기
아이들은 이미 놀이터나 오가는 길에서 황당한 욕을 여러 번 들었고, 그래서 그런가... 멘탈이 내 생각보다 강했다. 또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나름의 방법도 있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겪으며 아이들도 크고 있구나... 비단 사회생활을 나만 하는 것은 아이 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큰 애가 어느 날 저녁, 유난히 피곤해하는 나에게 다가와 '회사서 누가 엄마 힘들게 해?'라고 물은 날이 떠오르며, 내가 아이들 크는 걸 이토록 몰랐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미 겪었고 잊었고 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그래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부당함'을 생각보다는 잘 인지했다. 지금까지 겪어온 사회적 관습이나 통념 + 가정에서 배워온 가치(우리 집은 배려) + 학교에서 배워온 지식과 규율을 기반으로 부당함을 인지한다. 그렇지만 선뜻 부당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안? 못? 한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이'라는 사회적 통념에서 아이들의 말을 ‘말대꾸’로 치부해 버리는 암묵적인 관습 때문이겠지...? 우리집 애들이 키득거리며 아니란다. 가만히 있는 것이 그 상황을 제일 빨리 끝나게 하는 방법이란다ㅋㅋ
'나는 왜 혼나고 있는가'를 스스로 꼭 생각해 보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만 고치면 되는 거라고, 그것과 관련 없는 나쁜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 없다고 당부하며 밥상 수다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