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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ace May 07. 2024

화분을 샀습니다.

생기는 지금도 뿜어져 나옵니다.

화분을 샀습니다.


그렇게 긴 과정을 거쳐 분당에서 떠나 신촌 어딘가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아마 한 달가량이 지나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저녁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체력이 많이 나빠져 새벽에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편이다.


다만 그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오후 7시 퇴근에 틈만 나면 연장근무에 야근이 일상화된 회사였다. 저녁 시간을 뺏기기 일쑤였고,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개인적인 충전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결여되니 화가 많아지고, 쉽게 쳐지는 삶을 몇 달간 살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퇴사를 하게 되었고, 조금의 휴식 기간을 가진 후 다시 취업을 하거나, 하고자 하는 예술을 더욱 몰입하고자 했다. 다만 역시 삶은 나의 예상에 맞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취업을 하기는커녕, 생활비를 만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초조해지지 않으려 했으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한가하지만 조금은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나는 여러모로 어디서나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날도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연남동 카페에 가서 아르바이트 공고를 찾아보다 잠시 밖으로 걸어 나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의 머릿속을 울리는 하나의 생각.


“나의 집에 지금 살아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조금 날 듯했다. 아무리 여섯 평 짜리 작은 원 룸이라 할지라도, 집에 숨을 쉬는 것이 나 혼자만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급격히 외로워졌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 내가 자각하기 전에도 항상 나의 곁에 머무는 어떠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전세 계약서 상 동거인을 둘 수 없고, 반려동물을 기를 수 없는 나는 혼자 생존해 있는 나의 집에 들어가기 너무나도 싫었다. 이 생각의 파도 속에서 몸부림을 치던 중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다시 번뜩였다.


“식물이면 괜찮지 않으려나.”


당장 휴대폰을 들고 지도 어플을 켜고, 근처 꽃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달에 물을 한 두 번만 줘도 되는 그런 식물은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식물은, 내가 매일같이 물을 주며, 매일 마주하며, 아름다운 무엇인가였다. 다만 나는 퇴사한 지, 그리고 일자리를 구한 지 꽤 된 백수였다. 비싼 화분을 사기에는 나의 얇은 지갑이 고통스러워하겠지. 그러던 중 그날 연 꽃 집 하나를 찾게 되었고, 무엇에 홀린 듯이 걸어 그 꽃집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키워야 합니다. 작은 방에 두어야 합니다.”


사장님께서 몇 가지의 식물들을 추천해 주셨다. 몇 가지의 식물을 지나, 길고 얇은 하나의 식물을 발견했다. 꽃이 피어 있었다.

사장님께서 이 꽃의 이름은 [재스민]이라고 하셨다. 파란색과 노란색을 아주 섬세히 섞으면 아마 이 꽃의 잎의 색과 닮지 않았을까. 때 묻지 않은 하얀색이 이 꽃의 색깔이 아닐까. 작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후 카드를 내밀고 이 화분이 내 손에 쥐어졌다.


조심스레 택시를 잡고, 조심스레 집으로 향했다. 괜히 설레었다. 어디에 꽃을 두어야 할까. 집에 도착해 구조를 살폈다. 그래도 꽃이니 햇빛은 받아야겠지. 창가 밑에 잠시 두었다 창가로 화분을 올렸다. 방충망덕에 화분이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곳에 조심스레 화분을 두었다.


마침 해가 아주 따뜻하게 창가를 비추고 있었다. 하얀 꽃과 햇빛이 만나니 환하게 빛났다. 꽃은 향기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었고, 햇빛은 자신의 온기를 담을 수 있는 하얀 꽃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화분을 하나 놓았을 뿐인데, 나의 방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꽃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생기를 원해서 나를 이곳에 들였지만, 이미 당신이 생기를 향기롭게 내뿜고 있어요. 생존의 사투를 견디며, 이제 당신을 넘어서 나를 이곳에 들인 당신을 나는 보아요.”


그래. 나는 살아남았지.

지독하리만치 치열한 스무 해 이상을 싸워오며, 나는 결국 살아남았지. 그렇게 살아남아 나의 고통의 흔적을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지. 누군가를 만나 살아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함께하며 위로해주고 있지. 사랑받을 수 없는 한 패배자인 줄 알았으나 누군가가 나를 항상 사랑해주고 있었지.


아, 나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구나.

아, 나는 어쩌면 눈물 날 만큼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외로움이 나의 곁에 있지만, 사실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은 이 외로움마저 덮는 사랑이구나.

이 사랑 안에는 두려울 것이 없고, 사랑은 나의 삶의 완성이 되었구나.


그래,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당신에게도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당신도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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