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방인

by TheGrace Mar 13. 2025

   "하루가 정말 길다."

다시 출근을 하고 네 번째의 날을 맞이하고 책상 앞에 앉아 몇 번이고 되뇐 말이다.

바보가 되어간다. 몇 번의 실수와, 내가 벌인 일들을 바라보고, 심지어 나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도 가지지 못한 '직원 1'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온몸에 힘이 빠진다.


비어버린지 꽤 된 통장과,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에서 날아오는 돈을 갚으라는 문자.

이제는 매 달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이 아닌, 그 금액 전체를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어 그저 무작위로 확인되는 공고를 누르고 지원했던 회사에 출근을 했다.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새기는 것을 즐겨하던 예술가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되냐고? 망가진다. 나는 이것보다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조금만 더 해보자는 헛된 생각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뼈를 깎아댄다. 돈 이야기가 너무 자주 나와 민망하기는 하지만, 돈을 갚으라는 은행에서의 전화가 아마 나의 뼈를 깎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밥을 사 먹기도 힘들다. 밥을 해 먹기도 귀찮다. 아마 내일부터는 굶어야겠지.

담배를 좋아하기에 담배 한 갑을 사고 남은 잔고를 확인하니 이천 원 남짓이다.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지. 그런데 왜 나의 뇌는 자꾸 이상한 그림을 그려댈까. 


어릴 때는 큰돈을 벌고 싶었다. 자주 듣던 음악의 주인공들처럼, 비싼 자동차와 비싼 장신구를 지니고 다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가. 서른의 실패한 예술가이다. 스스로를 예술가로 칭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서른의 각박한 하루를, 그저 생존을 위하여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하루를 견딜 수 없으니까.


좋아하던 인센스 대신 담배연기가 나의 방을 채운다. 책상 위 어지럽게 놓여 있는 캔 위에는 습관적으로 재를 털어 재가루가 날린다. 나에게 사무실 책상은 낯선 곳이다. 파티션에 가로막혀서 오직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며 드래그와 클릭으로 하루를 보내는, 어쩌면 유배지이다. 더 큰 세상을 보고, 더 큰 세상을 그리고 싶었으나, 나의 현실은 삭막한 사무실 안 모니터 앞이며, 휴대폰을 울려대는 은행 대표번호의 전화이다.


글을 적기 싫었다. 적을 수 없었다. 그 어느 것도 나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방인의 삶을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에게는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그래, 아마 예술이라는 것은, 그림이라는 것은, 글이라는 것은 사금 같은 것이겠지. 잠기면 잠길수록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사금 같은 것이겠지. 잔인한 것은, 아주 깊이 잠겨 무엇인가 한 움큼 쥐고 올라와 그것을 햇살에 비춰보기 전에는 그것이 금인지, 혹은 별 볼일 없는 모래일 뿐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겠다. 


두 손에 무엇인가를 잡기 위하여 나의 의지는 아니지만 물속으로 잠겨간다. 잠시 사람을 피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이 막혀오고, 겁이 난다. 이대로 물 밖에 올라올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대로 그저 이 물속에서 마지막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난다. 그럼에도 발버둥 치는 것은, 그럼에도 조금 더 숨을 오래 참는 것은, 혹여나 내가 잡지 못하고 수면 위로 올라온 그곳 밑에 금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아닐까.


긴 하루를 보내고, 삼십 분 정도의 거리를 걷고 나서야 여섯 평 남짓한 나의 방에 몸을 누일 수 있다. 어느덧 봄이 왔고, 어느덧 낮이 길어졌다. 걷다가 무심코 하늘을 보았는데 아직까지 파아란 하늘에 큰 달이 떠 있었다. 하늘은 아직 밝지만, 그 달이 더욱 밝아 보였다. 지금 나는 잠겨 있는데, 무심하게 그 달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각자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다. 나는 다시금 수면 아래로 잠겨가지만, 그 달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나와 눈을 마주쳐 주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집으로 들어와 다시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무엇인가를 적는다. 나의 몸을 정과 망치로 깨고 부수어 형태를 만들어가는 조각가처럼, 괴로워하는 나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나는 망치질을 멈출 수 없다.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번의 망치질을 더 하기 위하여 피가 나는 몸을 애써 무시한다.


저녁이 길어지고 밤이 왔다. 방에는 담배냄새와, 피가 나는 몸을 움켜쥐고 가쁜 호흡을 몰아 쉬는 서른이 존재한다.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다시 수면 밑으로 들어가려 하는 한 서른이 존재한다.


현실이 문제일까.

예술이 문제일까.

이 서른이 문제일까.


탄생이 문제일까.

생존이 문제일까.

창작이 문제일까.


아름다움이 문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휴식의 필요성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