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공원 러닝
봄보다는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 꽃이 만개하고 모두들 들떠 있는 봄에, 나는 반대로 가라앉곤 했다. 하지만 유달리 마음이 달뜨는 날이 많은 이번 봄. 따뜻해지는 날씨 때문인지, 점점 늘어가는 달리기 실력 때문인지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인지는 몰라도. 만개하는 꽃처럼 나에게도 좋은 일이 가득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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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거의 몇 년 만이었다. 20대 초반에 몇 번 방문하고는 언젠가부터 찾지 않게 되었다. 사람에 치여 다신 오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곳. 그런 여의도를 벚꽃이 만개한 시즌에 달리게 되다니.
다들 노는데 우리만 러닝 하러 온 것 같아. 저기로 빠질까?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작한 달리기. 여의도 런은 6:30/1KM 페이스로 달린 첫 정기런이었다. 7:30 페이스로 시작했던 달리기가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1분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첫날엔 조금 이른 감이 있나 싶었지만 두 번째 날엔 내내 이야기하며 달리는 스스로에게 놀라운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벚꽃보다는 앞사람의 발자국과 호흡에 더 집중한 러닝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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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공원을 달린 그 주 주말, 을지로의 라이팅룸에 방문했다. 라이팅룸은 특정 주제 혹은 내가 쓰고 싶은 주제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우연찮게도 내가 뽑은 주제 중 하나가 '과정'이었다. 지난 시간과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 겨울 동안 땅 속에 머물던 씨앗이 새싹을 움트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은 결말이더라도, 움트기 위해 내가 들인 노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6:30 페이스까지 올라올 때까지 어떻게 했지? 매주 꼬박꼬박 달렸다. 일단 달리고 봤지. 다른 사람 페이스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 근데 처음부터 그렇게 욕심을 가지고 달렸나? 아니. 나는 그냥 달리고 봐야 했어. 매몰되어 있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냥 열심히, 즐겁게 앞만 보고 달렸어. 그랬더니 조금씩 성장해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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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예상치 못한 일도. 그건 마치 공들여 쌓은 모래성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파도 같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나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좋은 자양분을 만난 것 같다. 이 악물고 뛴 간절함, 달리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 출석도장을 꼬박꼬박 찍은 노력, 같이 달린 사람들과의 추억 같은 것들. 결국 결과보다는 과정이라고.
봄을 맞아 곳곳에 돋아나는 초록 새싹처럼, 나의 달리기 라이프도 자라난다. 그렇게 봄이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