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 당하는 삶, 괜찮은가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불가피하게 홀로 사는 삶을 택하거나 그 상황에 놓인 경우가 아니고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애정을 필요로 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인정욕구는 높은 수준의 욕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인증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며 살고 있다. 나의 하루도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일의 연속이다. 단톡방에 올라온 메세지를 확인하고 책모임에서 정해진 분량을 읽고 인증하는 글을 남긴다. 운동 인증방에는 그날 운동한 내용과 운동한 사진을 올려서 나의 실천을 증명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고 답글을 남기고 ‘좋아요’ 수를 확인한다. 글쓰기 마감 시간에 늦지 않게 업로드하고 링크를 공유하며 완료했다는 글에 답을 다는 등, 매일 확인하고 인증하고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고 자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일일이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증명하는 애를 쓰지 않더라도 내가 한 노력은 남을 것이고, 그동안의 경험을 쌓이고 있을 텐데. 그러나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때 행복하고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서적인 힘을 얻게 된다(Ohta, 1989, 이정은, 2008)고 한다. 결국 다른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말과 칭찬을 듣거나 능력을 인정받는 데서 정서적 힘을 얻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 힘을 받기 위해 애써 측정하고 증명한다.
아무튼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이 도장깨기 하듯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증거 자료로 남기고, 자신이 한 일과 달성한 것을 수치화해서 보여주고 싶어 한다. SNS가 이들의 욕망을 더 부추기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므로 측정 도구로 어플까지 동원된다. 운동 기록용 앱,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 독서 기록 앱, 신체 수치와 상태를 분석해 주는 인바디앱, 러닝앱 등 엄청나게 다양하다. 하루 종일 손목에 차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인 스마트워치를 가진 사람들도 무척 많다. 기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기록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은 점점 피로도를 높인다.
온갖 것이 측정되는 삶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는 이런 우리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그림책이다. 표지에는 다양한 종의 고양이 얼굴이 등장하는데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마치 증명사진을 찍은 모습 같다. 그리고 자의 눈금으로 표시한 테두리가 인상적이다. 증명사진은 주로 어딘가에 지원서를 내거나 시험에 응시할 때 제출하는 용도로 쓰이는 사진이고, 자는 무언가를 잴 때 쓰는 도구이므로 작가가 이 두 가지를 같이 제시한 목적을 추측하게 된다.
권정민 작가는 사람 대신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 세태를 꼬집는 작품을 여러 권 출간했는데 특히 인간사의 굉장히 불편한 진실을 다룰 때 우화 형식으로 인간 대신 동물을 내세워 은유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제시한다.
표지를 넘기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측정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측정할 수 있게 하자.”
짐작한 대로 내용 속에는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당신이 누구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측정해서 정보를 얻겠다고 한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재고 나면 당신이라는 사람을, 나라는 사람을 온전하게 그리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고양이를 내세웠다. 신체의 각 부분을 측정하여 생물학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체력과 지구력, 순발력과 어휘력 등을 알아봄으로써 능력을 측정한다. 그리고 종합 측정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측정하는데 식사 시간과 양, 운동해서 흘린 땀, 품위 유지 비용, 자기표현 능력과 타인의 관심도까지 측정한다. 평소에 내가 살고 있는 모습과 인증 사진으로 남겨 놓은 일상이 그림책의 장면과 너무나 똑같아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림책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 때가 많다.
측정하기를 멈출 용기
누군가를 칭찬할 때 ‘능력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능력’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어쨌든 이 단어에도 인정욕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의 발달로 자기표현이 자유로워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능력과 가진 것을 과시하고 ‘내가 이 정도인 사람이야‘를 드러내기 위해 매일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또 어떤 것을 측정하며 살아갈까?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와 체력? 노후를 대비한 재력? 보유한 자격증이나 어떤 자리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 ’좋아요‘수와 ’능력자‘라는 댓글이 주는 달콤한 만족감 때문에 아마도 계속 그런 생활을 하겠지만 측정되는 삶, 인증하는 삶에 진정으로 행복감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누군가 당신의 생물학적 특징과 능력과 세세한 부분까지 측정하겠다고 하면 응할 것인지, 거부한다면 왜 그런지 묻고 싶다. 그리고 모든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다는 말에는 얼마만큼 동의하는지도.
마지막 장에는 “지나친 측정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준다”는 염려의 문장과 “때로는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그러니 타인의 인정에 너무 목매지 말고 측정하기를 멈출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