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로 책 옮기기
석면 공사 이슈로 개학도 늦고
모두 다 빼냈던 교실 짐을 다시 채우며 정비하느라 난리였다.
나는 어차피 연구년으로 내 짐을 다 가지고 나온 상태였긴 하지만
친한 언니 사무실에 맡겨 놓은
1500권쯤 되는 책들을 실어와야 하고
교실에 넣어야 하는 상황.
책꽂이 하나 없는 텅빈 교실에
책장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여기저기 동냥하듯 구하고
내놓은거 가지고 오고 해서
얼추 교실 양쪽으로 맞춰넣었다.
이제부터는 남편과 아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언니네 사무실가서 힘들게힘들게
책을 옮겨 차에 실어서 날랐다.
마지못해 끌려온 아들은
입이 댓발 나와서 오만 인상을 쓰며
책을 옮겼다.
그런데
책무게에 눌린 남편차가 내려앉아서
주차장 턱에 긁히는 일까지 발생하자
나도 아들도 너무 놀랐다.
매년 책때문에 고생해온 것도
늘 고맙고 미안했는데
차도 상하고 위험해지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는ㅜㅜ
그때부터 아들이 좀 숙연해지더니
태도가 살짝 달라졌고
내가 알바 비용으로 5만원 주겠다고 하자
면허 재시험 비용낸거 충당되겠다며
화색이 도는 얼굴이 되었다.
본인이 하루 5시간 힘들게 고깃집에서 일해야 6만원인데
2시간 정도 하고 5만원이면 괜찮지.
나는 교실에서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입구에 늘어놓은 책을 아들과 남편이 옮기는걸 보고
기사님부터 주무관님까지
남편에게 어느 업체에서 왔냐고 물어봤단다.
업체 아니고 개인 소장 책입니다~했더니
다들 놀래시더라는 얘기를 전해줬다.
그래, 내가 심하긴 하지.
지난 학교에서는 책 때문에 학교 못옮긴다고
그냥 유예하라며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걱정을 들었던 나다.
일당 얘기가 힘이 되었을까.
씩씩하게 책을 나르기 시작한다.
프레임좋은 뒷모습의 이십쨜.
책꽂이에 크기별로 정리하는 모습에 놀랐다.
아빠도 아들이 알바 해보더니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며 칭찬해주니
으쓱해한다.
복직하는 엄마의 새학기 준비를 위해
교실로 책 날라주고 책꽂이에 정리해주고
노끈 쓰레기까지 싹 버려줬다.
철없고 네가지 없게 굴던 모습때문에
서로 악다구니쓰며 싸운 날이 많았는데
이때 아들의 모습은 너무 듬직해 보였다.
사회 생활 조금 하더니 변했네.
역시 사람은 힘들어봐야 한다.
아무튼 셋이서 정리하니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나 혼자였으면 끙끙 앓으며 며칠동안 고생했을텐데
내가 힘들거 알고 매번 도와주는 남편과
이번에는 아들까지 힘을 보태준 덕에 쉽게 해결했다.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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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시작 잘할 수 있게 되서 기쁘다.
책 때문에 힘들고 고생하는 것 같아서
뭐하러 이러고 사는건가
대단해지지도 못하면서
왜이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런데
교실에 책 많아서 애들이랑 학부모님들이
너무 좋겠다는 얘기,
학생들이 우리반은 책이 많아서 좋다는 얘기를 해줄때면 고생한 기억은 싹 날아간다. 이런 보람때문에 계속 사서 고생하는 나.
욕심 내려놓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중인데
마침 포춘 쿠키 메세지가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거창하게 뭐가 되지 못해도
나는 나의 속도와 능력만큼 살아내면 된다.
감사하면서 살다보면
돌고돌아 좋은 것들이 오겠지.
아들아~
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봐.
일 끝나자마자 바로 입금해줬다.
엄마에게 두 시간 고용됐던 아들아~
서로에게 윈윈이었지?
현금은 아들을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