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아침 8시로 예약해둔 상태라
아침 일찍 병무청에 데려다줬다.
도살장에 끌려가듯
죽을 상을 하고
마지못해 내려서 가는 아들.
어쩌겠니.
어차피 겪을거
적극적으로 빨리 해버리자.
결과는 2급 판정.
결과지 찍으려니 승질을 낸다.
그래서
못찍었다.
아들이 신검받는 동안
나는 성당에 들렀다.
주말 외출 나와서 눈이 팅팅 붓도록
울며 힘들다고 하던 딸이
기숙사에 들어가서
또 울지는 않았을까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고
언제 이렇게 내 아들이
병무청에
신검받으러 갈만큼 컸나 싶고
복직하는 나도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뻗어나가니
모든 것이 번뇌고
사는 것이 고행이다.
사순시기와 맞물려
나를 시험하시는 기분이다.
그래.
나는 내게 주어진
고난을 견뎌야지.
인자하신 성모님~
제게 지혜를 주세요.
기다리는 동안
잠시 카페에서 일하다가
검사 끝나고 온 아들과 다시 만나
둘이 행궁동에서 밥을 먹었다.
역시나 예쁘게 말하지 않고
서로 못잡아먹어 시비걸듯
툭탁거리며 주고받는 대화.
우당탕탕
애증의 관계지만
그게 또 우리만의
소통 방법인 것을.
식당 선택은 쏘쏘였다.
가성비 떨어짐.
요즘 알바하면서
아들과 대부분의 대화가 돈에 관한 것이다.
경제 개념이 생기고
인간사는 많은 부분이 돈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 이십쨜.
매일 다리가 퉁퉁 붓도록 5시간씩
고깃집에서 일하며
세상살이의 고됨을 알아가는 중인지
한 번씩 뜬금없이 내뱉는 말들이
입술에 침은 바른건가
물어보게 되는 내용들이다.
11시 넘어서 퇴근하고 온 아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연어 샐러드를 만들어줬더니
엄마 밖에 없다~라고 한다던가
오늘은 갑자기
낳아줘서 고맙다고 하길래
갑자기 왜?!
그랬더니
노동이 힘들다는 걸 경험해보니
엄마아빠는 대단한거 같고
키워준 고마움을 느낀단다.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하기에
그건 또 왜?
하니까
어떤 일이 있을때 힘을 합쳐 도와주는건
가족뿐인거 같다고.
그래 이자식아.
그걸 이제 알았냐고.
그동안~~
수백 번 수천 번 느끼도록
엄마아빠가 너한테 얘기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온갖 애를 쓰며 키웠는데 말이야.
본인이 고집부려서 저지른 큰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보고
스무살 백수 성인이 되어 체감하는 나날들을
살아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다니.
인생이 그런거지.
부모가 아무리
너 그러다 넘어지니까 안 넘어지게 이렇게 해보라고 백날 얘기해도
결국 지멋대로 해보다가
넘어지고 깨져서 아파야
깨닫는 거다.
이 글귀처럼
쭉 뻗은 길로만 걸었다면
보지 못했겠지.
지금
니가 걷는 그 굽은 길들이
더 풍성하고
스토리가 많은
니 인생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돌아가도 괜찮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굽이굽이 골목길
이왕 걸어야 한다면
구석구석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며
같이 잘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