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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알바

인생의 쓴 맛을 보는중

by 은가비

매일 게으름의 극치를 보이며

엄빠의 속을 뒤집는 이십쨜 으른이.


스스로는 적극적인 노력을 안해서

알바라도 구하라고

여러 번 얘기하고

아빠가 당근에 올라오는

구인 공고를 카톡으로 보내길

여러 차례.


피티샘은 쿠팡 물류 센터라도 보내라기에

아들한테 얘기했다가 싸울 뻔했다.

자기 친구들 며칠 가고는

다시는 안간다고 했다며

거긴 갈데가 못된다는 투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있냐고 이자식아.


집에서 가까운 호프집 알바 자리가 떠서

면접을 보러가게 되었다.

어떻게 대답해야하냐며

걱정하길래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그리하여 그는

생애 첫 면접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냥 넋놓고 있지 말고

다른 데도 계속 찾아보라고,

10군데 면접 보면

1~2군데 된다고

생각하라는

냉철한 아버지의 조언에

거리가 좀 있는 스시집 면접도 보고왔다.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며

은근 기대를 했고

집에서 가까운

동네 큰 고깃집 알바 면접도 보고왔다.


연락준다는 날이 겹칠 수도 있어

둘 다 되면 어디를 가야하냐는

그의 김칫국 걱정이 무색하게

스시집은 연락이 깜깜이었다.


갓 고등학교 졸업한

알바 경력이

1도 없는 이십쨜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경력을 쌓을 기회를 줘야

경력직이 될텐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두번의 좌절을 맛본 그.


쪼그라들어 보이는 아들이 짠해질 무렵

고깃집에서 나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일단 금토일 3일 5시간씩 근무하는

수습으로 일해보라고.


나는 참으로 기뻤다.

그가 드디어 노동을 하게 되어서.

힘들게 일해서

자기 손으로 노동의 댓가를 받아보는

기회가 생겨서 말이다.


그러나

수습이기에 시간당 12000원이 아닌 최저 시급 근처의 10000원.

그래도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이니

차비 안들고

날씨 궂어도 그냥 갈 수 있잖아.

(엄마의 속마음은 럭키비키잖아)

그러니

무조건 해봐야지.


요식업쪽에서 일하려면 알바생도

'보건증'이라는게 필요하단다.

보건소에 가서 필요한 검사를 했다.


지난 달은

둘째 기숙사 입소때문에 검사하러 다녀가고 결과지 받으러 또 오고 했는데

이번 겨울에 보건소를 여러 번 와보게 되었다.

아이들 키우며 나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모르고 살던 세상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된다.


아주 간단한 검사들인데도

결과가 안좋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되는

새가슴 엄마.

자식 일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쫄보가 된다.


그리하여

며칠이 지나고

그는 마침내 고깃집으로 첫 알바를 다.


처음으로 5시간 일하고 퇴근한 아이를 맞이하며 스캔하듯이 살폈다.

얼굴이며 손, 옷 여기저기

검댕 숯을 묻히고 퇴근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아들은

힘들지만 일이라는걸 하게 된 자신이 신기한지 이런저런 경험담을 늘어놓았고

아빠는 맥주 캔을 마주쳐주며

들어주었다.


5시간동안 한 번도 앉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며 서빙하고

불판을 갈고 했는지

(야무진 아이가 아니라 불판 들다가 떨어뜨리는 실수하거나 데일까봐 온갖 걱정이 되는 애미)

다리와 발이 부어서 아프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좀 평발이다. (ㅡ.ㅡ)

마음이 쓰이지만 본인이 겪어야만 하는 일.

하루 하고 때려친다 할까봐 맘 졸였다.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고

더 빡세고 힘든 주말까지 일해서 3일을 채웠다. 진심 돈을 벌고 싶긴 한가보다.

몸이 피곤해서 아주 죽을 맛인지

낮에는 아무것도 안한다.


집에선 안하고 살던 일들을 해보니

힘들었겠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 줄 알았는데 막상 보면 시간이 너무 안갔고

첫 날 일하면서

'엄마 보고 싶었'단다.

이말에 가슴이 찌르르~했다.

평소 우린 애증의 관계이므로

저 한마디에 들어있는 많은 의미에

애미는 찡했다.


불판 설거지를 빨리빨리 하는 노하우를

알려달라는데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음식 쓰레기 가득찬 통도

역한거 참고 겨우 비워내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일 배우느라

곤욕스러운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코를 풀때마다 코에서

시커먼 잿가루가 나온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마스크쓰고 일하라고 챙겨줬다.

알바비 벌자고 중요한걸 놓치며

어리석게 건강을 해쳐서는 안되니까.


아들아.

지금 너는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진짜 공부를 배우는

귀하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온전히 통과해내며

체득해야 해.

온실속 화초로 살던

껍질을 뚫고

사회로 나와

날것의 인생을 배워야 큰다.


덧1) 오늘은 종일 누워있다.

아침에 내가 예약해준 얼굴 맛사지 피부관리 받고 온게 전부다.

후.

나같으면 6시 전까지 하루를 다 쓸 수 있으니

헬스장도 가고 책도 읽고

월~목에 할 수있는 다른 알바도 찾을텐데.


너는 내가 품고 낳은 아들인데

이십년 가까이 키워보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너는 내가 아니더라.


덧2)

내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일한단다.

피지컬은 괜찮은 편이니 호감 얻겠지.

이제 경제 활동을 시작한 진짜 어른이구나.

열심히 해서 일 빨리 익히고 수습 벗어나자.

몇 달간 사회 경험쌓고

하반기에 기간 딱 맞게

군대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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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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