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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운전

by 은가비

아들에게 운전 면허를 따라고 했다. 다른 집 딸들은 수능 끝나자마자 준비해서 다 땄다는데... 우리집 금쪽이는 정시 실기까지 다 본 이후에 한다더니 지금은 아무 할 일이 없는 상태임에도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이 없다. 아마 겁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어플로 필기시험 문제라도 풀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알바도 빨리 구하라고 했는데 아빠가 당근에서 구직하는 곳을 알려줬고 집 근처 호프집이길래 면접을 보고 왔다. 면접 보러 가기전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20살이 되었는데도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느라 진짜 스스로 할 줄 아는게 너무 없구나 싶다. 이 금쪽이를 어쩌면 좋을까. 너를 독립시키는 그날 나는 정말 세상을 구한 기분이 들것 같아.


운전과 인생은 닮은 점이 많다. 오래전 읽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던 책인데 아들이 성인의 나이가 되고 나니 다르게 읽혀서 그림책 모임에서 내 발제 순서가 되었을 때 이 책으로 진행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쓴 글이 서평답지 못하고 자꾸 수필체가 되어서 늘 애를 먹는다. 글쓰기 재능없음에 또 좌절하지만 나는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괜찮다.(괜찮고 싶다) 한 번 고쳐서 쓴 글로 올려본다.



인생이라는 운전대의 주인이 되기를.

운전하려면 면허증부터

처음 운전했던 때를 떠올려보자.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던가. 운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잊지 못할 경험담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긴장해서 역주행할 뻔한 아찔한 실수, 옆 차선의 차들이 온통 내 차 가까이 와서 부딪칠 것 같은 걱정에 심장이 두근대던 일, 주차하다가 여기저기 차를 박았던 경험에 대해 다들 할 말이 많다.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은 내 의지로 통제가 가능하지만, 차라는 물체를 조작해서 이동하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으려면 먼저 면허증을 따야 한다. 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차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부터 조작 기능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직접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면허증을 딴다고 해서 바로 운전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속 운전 주행 연습을 하면서 다녀보고, 도로 연수를 추가로 받기도 하면서 점점 익숙해지게 된다.

인생과 운전

운전과 인생은 닮은 구석이 많다. 길을 제대로 찾아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속도와 방향이 중요하기에 직접 시행착오를 겪고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여유를 가지고 즐길 줄도 알게 된다. 때로는 내 의지나 잘못과 상관없이 어려운 일을 겪게 되거나 사고가 나기도 하므로 늘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도처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공통점이 많은 운전과 인생을 주제로 한 그림책이다. 채인선 작가가 글을 쓰고 박현주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조수석에 앉은 아이가 아빠에게 운전에 대해 물을 때마다 아빠가 들려주는 대답은 인생의 지침이나 조언으로 들어도 손색이 없다.


육아와 운전

인생과 운전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그림책에서 아빠가 아이에게 해주는 말들을 통해서 육아와 운전에도 공통점이 많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이는 아빠에게 자기도 운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아빠는 하나하나 자세하게 대답해준다,

아빠는 아이에게 운전하려면 나이를 먹어야 하고, 아빠가 어떻게 운전하는지도 잘 보면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운전할 때 지켜야 할 것이 많고 복잡하고 먼 길을 가야 할 때도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아이는 운전하기 싫어졌다며 멀리 가지도 않을 거고 계속 아빠 차를 얻어 타고 다니겠다고 했다. 아이는 자라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불안감을 느낀다.

아빠와 다른 사람들이 운전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신호와 지켜야 할 규칙을 익혀야 한다는 얘기에서 아이를 키우며 부모됨을 배우는 과정도 비슷하다는 은유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운전대의 주인이 되려면

이 그림책에서 운전이라는 단어는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것,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인상적인 한 장면은 모양과 색이 다른 3가지 자동차가 겹쳐있는 그림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부모가 된 후에 아이가 자신의 자리에 파고들어 틈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가 독립해 나가면 그 자리엔 빈 구멍이 생겼다고 허전해한다. 그렇지만 각각의 존재감으로 겹쳐있는 이 장면은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며 생각을 전환하게 한다.

부모는 아이가 독립된 개체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는다.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해서 실수하기도 하고, 독립시켜 떠나보내고 나면 빈둥지 증후군을 겪기도 한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에게는 늘 마음이 쓰이고 걱정되는 존재다. 아이가 자라 자기 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동안 부모도 준비를 해야 한다. 자녀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과 단단한 마음을 가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도 아이도 자기 차를 안전하게 잘 운전해서 가고 싶은 곳을 다니고, 그러다가 만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서로가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한다. 아이가 인생이라는 자기 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결국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육아의 완성은 건강한 독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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