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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라는 외계인

by 은가비

2월부터는 기타 학원비를 내주지 않겠다고 선포했었다.

별로 타격감이 없어 보여 더 열받았다.


학원에서는 입시 준비하는때도

애가 실력도 별로인데 미친듯이 열심히 하지는 않는걸 보며 속으로 한심해 했을텐데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는 부모는 더욱더 한심해했겠지.


욕했겠지.

설상가상으로 입시 결과도 뻔해 보이는데 연락도 거의 없는 학부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나는 나대로 너무 부끄럽고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비참하고 비굴해지기 싫어서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실용음악으로

재수 지원은 없다고 진즉부터 얘기를 해왔고

2월부터는 학원비 납부하지 않겠다고 한 나의 말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겨우 주 1회 가던 학원이었지만

고정적이고 나름 자기에게 가장 중요했던 스케줄이 없어진 아이는

학원에 가던 월요일,

뜬금없이 이케아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ㅡ에?

웬 이케아?

뭐하러?


ㅡ그냥 구경하고 사고싶은거 사러.


설명절에 용돈은 두둑히 받았으니 쓰고 싶었겠지.

그러나 내 상식으로는

고등학교 졸업한다고 다들 제법 주신건데

입시 결과도 없는데

그돈을 쓰겠다고?

양심도 없네. 증맬루.

미안해서 못써야하는거 아냐?


그러나 늘 내 상식을 벗어나야 아들이지.

안그러면 니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겠니.

자기방 꾸미는 타이머와 소품 외에

이런것도 사들고 왔다.


속으로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힌데

본인은 나름 가족 생각하며 사온거라

칭찬을 기대하고 있을

초등마인드의 아들을 내가 알기에

고맙다고 했다.

네 식구라서 컵 4개짜리 세트를 샀을 것이고

커피 중독자인 엄마 마시라고 샀겠지.

원두.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거란다.

잘샀네.

그래.

그런데...

있잖아.

우리집에 원두 분쇄기도

커피 머신도 없는데ㅠㅠ

콩 그 자체ㅡ.ㅡ

하.

씹어먹어버리까.

개중 제일 뜬금없는 아이템.

필요할 거 같아서 사왔다는데. 하.하.

그래.

어떻게든 내가

필요를 만들어 볼게.

결국 블렌더에 원두를 갈고

여과지마저 없어

다시팩에 넣어

추출했다.

이렇게라도 마시겠다는

나란 인간도

참...징하지.

커피에서 쓴 맛이 나는건

기분 탓일까.

20년차 내 육아 생활이 고되서일까.

아들 엄마하기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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