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가비 Oct 14. 2024

[100-36] 살림은 재미가 없어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안에서 인터넷 케이블 연결을 무료로 바꿔준다는 광고를 보았다. 물론 잘 들여다보면 와이파이 공사는 해주는데 통신사를 바꾸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일단 기존 와이파이가 너무 느리고 최근에 오류도 많이 나서 연결선 교체 공사를 하기로 했다. 기사님이 오셔서 선이 있는 곳 주변에 있는 물건과 가구를 옮겨야된다고 하셔서 들어냈더니만 으악. 너무 챙피했다. 쌀알이며 먼지,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수납장 뒤에 떨어져있었다. 당황한 나는 얼른 소기로 빨아들이고 물티슈로 닦았다. 그걸 치우고보니 그 주변으로 너저분한 살림살이와 어수선한 짐들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작업하시는 동안 좀 떨어져서 거실에 있는데 객관적인 시선으로 집안 환경(이라 쓰고 집안꼴이라 읽는다)을 둘러보게 되었다. 지저분하고 정리도 안되어 있고 어수선 그 자체다. 특히 책 무더기는 여기저기 쌓여 있고, 운동 가방, 에코백, 외출용 가방 등은 식탁 주변 바닥을 둘러싸고 있다. 눈에 보이는 데다가 두고 가지고 갔다가 다시 놓고 그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는 수납이나 정리를 잘 안한다. 아니, 이제는 못한다. 그러고 싶은 에너지가 안 생긴다고 해야 맞겠다. 손님이 오는 일은 명절 때가 유일하므로 그 전에 대대적인 집안 청소를 하면서 버릴거 버리고 집안을 좀 정리한다. 평소에는 각자 다들 익숙하고 편한대로 생활하다보니 자잘한 짐들이 널브러져 있기 일쑤다.


 워킹맘이라 바쁘게 살기도 했지만 목표지향적인 성격이라 매일 해도해도 똑같은 집안 일에는 목표의식이 안 생겼다. 하면 깔끔하고 식구들 기분이 상쾌하긴 하겠지. 그런데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것은 하지만 현모양처모드로 매일 쓸고 닦고 하지 않는다. 마음먹고 싹 치우고 정리하고 할 때도 있지만 해보니 자주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더라.


 나의 문제도 있지만 주로 내가 내세우는 핑계는 집이 좁고, 오래된 아파트여서 새 아파트들처럼 수납 공간이 많지 않고 비효율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또, 우리 집이 책이랑 책장 때문에 잡아먹는 공간이 많고 짐이 많은 편이라는 걸 인정한다. 이건 내 탓이긴한데 어쩔 수 없다. 책을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정리하고 정리해도 또 사고 읽고 하기 때문에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다. 하는 일도 관련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주방은 진짜 좁아서 수납이 안되는 문제로 복잡하고 지저분해 보인다. 부지런히 집어 넣고 그릇도 최소한의 것만 꺼내놓고 쓰고 하면 좀 낫겠지만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살림은 재미가 없다. 식구들 먹이고 입히고 해야 하는 의무감이 대부분이지 기쁨을 주는 순간은 별로 없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하는 거라고 강요한다면 좀 더 재능있고 만족감을 느끼며 잘하고 싶은 사람이 역할을 분담해서 했으면 좋겠다. 나의 성향을 이제는 가족들도 알아서 서로가 많이 양보하고 적응하고 알아서 챙겨먹기도 하고 하는 중이긴 하지만 한 번씩 나 스스로가 마음이 불편하다. 반짝이고 깨끗한 집, 가구며 짐도 최소여서 집 자체가 깔끔해보이는 상태를 유지하면 좋을텐데 그러질 못하니 말이다. 아이들이 더 크면 진짜 진짜 진짜 대대적으로 짐을 왕창 버리고, 내 책들도 좀 정리하고, 가구도 최소한의 것만 남겨서 미니멀하고 깔끔한 살림으로 꾸려야지 생각은 하고 있다.


 둘째가 대학생이 되려면 3년 남았으니 내게는 3년이란 시간이 있다. 내 계획은 3년 안에 베란다 공간을 싹 정리하고, 버티컬도 전부 바꾸고, 거실 유리문은 폴딩도어로 공사하고, 거실에는 쇼파도 없애고 독서용 의자만 한 두개 남기고, 거실과 방, 베란다마다 있는 책장도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없애고, 티비 주변의 장도 버릴 예정이다. 3년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데 이중에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어서 부끄럽네. 앞으로의 3년 안에는 실천할 거다. 큰 아이가 내년이면 20살이 되고, 아이들이 혹시 연인을 데리고 온다거나 할 때를 생각하면 꼭 사전 작업으로 해두어야만 하는 일들이다. 쓰면 이루어질테니 써놓고 실천하자. 살림이 재미는 없어도 깔끔해진 공간은 우리 가족을 좀 더 기분좋게 할 것이므로 노력해보리라.  


덧) 가장 큰 바램은 넓고 좋은 새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이다. 그거면 다 해결된다.

이전 05화 [100-35] 인생을 배워가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