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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Oct 14. 2024

[100-35] 인생을 배워가는 중

 아들의 세 번째 실기고사를 치른 날이다. 아이가 좀 편하도록 운전해서 가고 싶지만 많은 이들이 시험보러 오느라 주차대란일테고 서울은 특히 주차장도 협소하여 더 힘들어 질거 같아서 대중교통으로 다니고 있다. 버스며 지하철을 갈아타느라 보통 왕복 4시간이 소요된다. 아이는 무거운 기타까지 메고 있으니 어깨도 아플 것이고 마음은 긴장되서 전반적인 피로감이 클 것이다.


 고사장에 30분 전까지 입실 완료라서 아이가 들어가고 나면 나는 커피숍이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카톡을 보냈다가 혹시 핸드폰이 울려 실격을 당할까봐 연락도 하지 않고 막연히 기다리는데 집중이 되지 않아서 가져간 책은 읽는둥마는둥 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불안한 마음에 커피도 후루룩 마시고 나와서 고사장 앞을 다시 기웃거리며 서성이곤 한다. 엄마의 마음이란게 이런건가.


 시험장에 오가면서 보니 다른 아이들은 기타 가방에 인형이며 이것저것 뭔가를 많이 달고 다니던데 아들은 아무것도 달린 게 없어 마음이 쓰였다. 첫 시험 보러 갈때 아들에게 묵주 팔찌를 줬더니 끼고 좋아했던 게 생각나서 오늘은 네잎클로버 고리를 줬다.

"아들아~ 행운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야. 그리고 이거 DJ래피님 북토크할때 갔었는데 그때 받은 선물이거든. 그러니 좀 더 특별하지?"

마음에 들었는지 걸어놓고 표정이 흡족해진 아들을 보니 나도 좋다.

 학부모는 출입금지라 건물밖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봤다. 왜이리 안쓰러운지. 저렇게 앉아있다가 대기실로 또 우르르 들어간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동안 어떤 마음으로 시험을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만 한가득이다. 덩치는 어른이 되었어도 엄마인 나에게는 여전히 다 미숙해보이고 어리게 느껴진다.


 금방 나올듯하여 바로 앞에서 기다리는데 오늘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 나왔다. 30분전에 들어간 것까지 합치면 거의 2시간이 걸린거다. 나도 지쳤지만 겨우 1-2분 안에 자신을 테스트하는 시험을 위해 1시간을 넘게 기다리고서 실기를 치른 아이는 더더욱 지쳤을거다.


 긴장하는거야 당연한데 앞서 본 두 번의 시험에서 안타까운 실수나, 음향 시설 상태가 뜻대로 안되거나 하는 불만을 호소했었다. 세 번째인 오늘은 잘했으려나 싶어 물으니 연주는 떨지 않았으나 교수가 연주한 음을 듣고 따라서 쳐보는 것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너무 속상해했다. 평소 절대음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음을 듣고 잘 맞추는데 왜 그랬니. 그런데 시험이란 관문에 닥치면 온갖 변수가 생기고 뜻대로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미 지난 일 어쩌랴. 매번 이런식으로 깨지면서 느낀 것들을 보충하면서 듬성했던 틈을 메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지 자기는 재능이 없는 거 같다며 음악을 때려치워야겠다는 얘기를 한다. 아직 입시 다 치른것도 아닌데 벌써 그런 소리를 하다니 ㅠ ㅠ 천재가 아닌 이상 연습과 버티는 것,  그게 최선이다. 아들아~ 멘탈 챙기자. 대신 겪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대입을 치르고 나면 (어디 한군데 만이라도 붙어라. 제발) 앞으로 사회생활에서는 더 상처받고 힘든 경험을 많이 해야 할텐데... 인생 선배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끝까지 버텨내는 사람이 강한 거라고, 지금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라는 뻔한 교과서 같은 조언이다.


 우리 지치고 힘들었으니 일단은 밥을 먹자. 이왕이면 힘나게 고기를 먹자꾸나. 근처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삼겹살을 시키고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기를 먹었다. 배가 조금씩 차오르니 아이도 마음이 살짝 괜찮아졌는지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역시 속상하고 힘들 땐 위로가 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 치즈볶음밥까지 마무리로 야무지게 먹고 남편을 기다렸다.

 컨디션도 안좋고 마음이 힘들어 하는 내가 짠했는지 서울까지 데리러 올까?라고 묻는 그의 전화에 울컥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가 도착할 때까지 느긋하고 편안하게 밥을 먹었고 편안하게 차를 타고 오면서 지친 몸을 좀 쉬었다. 전우와 나는 함께 이 전쟁을 잘 치뤄내기 위해서 요즘 열심히 합심하고 있다. 큰아이는 입시로, 둘째는 학교 문제로 고민이 깊어 우리 둘은 매일 서로를 위로하며 같이 부모 노릇을 잘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이 시간을 잘 통과하고 싶다. 고민하고 슬퍼하는 나를 위해 마음 써주는 이들이 있어 힘을 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쓰는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마음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도 아이들도 인생을 배워가는 중이다. 단 한 번의 생이니 처음 겪는 모든 일들이 서투르고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지 않나. 먼저 삶을 시작했고 너희를 세상에 내놓았으니 엄마아빠가 책임지고 도와줘야겠지. 아이를 키우며 부모도 다시 자기를 돌아보고 재양육하며 함께 인생을 배워간다. 아이가 자라는때마다 부모도  그 시절의 나를 다시 겪으며 살아가는 기분이 된다. 서로 너무나 다른 인격체지만 우리는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한 팀이다. 가족의 응원과 지지가 힘이 세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동안 불량 엄마로 보냈던 시간을 만회하고 든든한 버팀목과 울타리로 곁에 있어줘야지. 지나고나면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지금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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