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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Nov 07. 2024

[100-60] 제대로 꼬인 날

신세한탄용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날이라고 해야할까. 유독 안되는 일들로 꼬이는 날이 있다. 한 가지 일을 시작으로 해서 그날의 일정은 어김없이 연달아 뒤틀리곤 한다. 내게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서울교대에서 진행하는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몇 가지를 맡은 일정이 있는데 오늘은 오후에 대학로 연극을 인솔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성인들이라 딱히 인솔이라 해도 내가 뭘 하는 일이 있지는 않지만 관람할 연극을 정했고, 진행 강사 중 한 명으로 동행하는 것 자체가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29명이나 되는 인원의 점심 식사 식당 예약으로 어제까지도 교수님과 담당보조 요원, 연수 진행 사무실과 계속 통화를 하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해결되어 한시름 놓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리면 교대역까지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니까 12시쯤 식당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시 40분에 출발하는 차였고 2시간 20분 정도 걸릴 예상인데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니 푹 자야겠다 생각하고 편하게 잠들었다.


 한참 가는데 갑자기 차에서 "삐이이이이이이~~~~~~~~~~~~"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는게 거슬렸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린적이 없는가. 기사님이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고장났다며 다음 차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옮겨타야한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퍼지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남편은 걱정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왜이리 재수가 없냐며, 요즘 되는 일이 진짜 없다고 속상해했다.


 게다가 약속 시간은 얼마 안남았는데 서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용인 죽전 근처에서 이러면 어떡하냐고요. 난 혈압 터질까봐 혼자  화내다가 그냥 무념무상으로 기다렸다. 곧 온다던 차는 한참이 지나서야 왔고 나는 12시가 넘어서야 다른 차에 옮겨탈 수 있었다.


 담당자와 계속 카톡을 주고 받으며 타들어가는 마음에 나는 점심 안먹어도 되니 신경쓰지 마시라, 바로 대학로로 가겠다 했더니 1시까지만 오시라고, 고터에 내리면 연락달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갈아탄 버스 기사님은 정차한 시간때문인지 밟아주신 덕분에 12시 40분쯤 터미널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식당으로 갔다. 나랑 같이 밥먹어주려고 기다린 진행요원에게 얼마나 고맙던지. 식사 후 배부르고 기분이 좋아져서 씩씩하게 혜화역으로 향했다.


 3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방향이 헷갈려서 행인에게 "혜화역 가려면 어느쪽으로 가야하죠?" 물었더니 중년부부가 자기들도 그쪽으로 간다며 같이 가면 되겠다고 따라오라 하셨다. 잘됐구나 싶어 아무 생각없이 같이 지하철을 탔다. 아, 그런데 몇 정거장 안가면 내리는 거였는데 뭔가 시간이 계속 걸린다 싶어 노선을 보니 아뿔싸. 반대쪽으로 탔다. 내가 혜화라고 한걸 회현으로 들으셨던걸까 ㅠ ㅠ


 연극인솔 보조 요원과 또 미친듯이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연극시작이 2시 30분이니 20분까지만 오라고 하셨다. '연극라면' 전용극장에 2시 15분에 도착해서 단체로 보이는 일행에게 가서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나를 이상하게 보신다. "아까 통화한 000 인데요. 단체 00아닌가요?" 했더니 아니란다. 민망해라. 죄송하다고 하고 담당자랑 통화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가 안 보이고, 그도 내가 안보이니 이상하다고 했다. 그래서 "연극라면 보시는거 아닌가요?" 했더니 "선생님! 런투 패밀리 보는겁니다."라고 하는게 아닌가.


 으아아아~ 이게 무슨 소리야. 오늘 정말 세상이 나를 여러 번 엿먹인다. 연극 정할 때 '런투패밀리' 를 제안했지만 인원과 예약 일정이 마땅하지 않다고 교수님께서 1학기에도 봤던 '연극라면'으로 봐도 되겠냐 하셔서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 바뀌었나보다.


 나는 장소 검색을  따로 해보지 않았고 '연극라면'만 생각하고 왔단 말이다. 더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나의 실수도 있지만 여러모로 계속 어긋나는 일정들이 고난의 연속일 오늘을 짐작하게 했다.


 2시 24분에 장소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고 미친듯이 뛰어서 29분에 장소에 도착해 담당자에게 티켓을 수령하고 시작전에 겨우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등줄기에 땀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으니 말 다했지. 스스로 진정하고 위안을 삼기 위해 연극을 재미있게 보자며 내 멘탈을 부여잡았다.


 극은 재미있었고 남주인공은 성형 미남같았지만 그래도 외모가 훈훈하여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다시 지하철을 타러가는길에 산책하듯 지나온 대학로는 가을 축제 분위기로 한창이었고 고터는 성탄과 연말 분위기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거리를 움직인 오늘 너무 힘들었다. 왕복 7시간을  써야하는 하루.

  사격장이 보이길래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신나게 총을 쏘았고 처음 해보는거 치고 적중률이 나쁘지 않았다. 안 좋았던 일진은 그냥 다 날려버리고 액뗌한 셈 치자 생각했다.


 앞으로 나에게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 기대하며 좋은 소식을 기다려 봐야겠다. 고진감래이기를.


 액땜이란, 나쁜 일을 겪었을 때, 특히 한 해의 초반이나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 겪었을 경우 ‘나쁜 일을 겪을 바에 큰일보단 작은 일을 겪는 것이 낫다.’거나 ‘중요한 일을 망치기 전에 나쁜 일을 미리 겪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또한 나쁜 일을 미리 겪어 큰 재난을 피하자(피해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자기합리화 하는 생각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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