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을 찾아서
한 남자가 있습니다. 두 손으로 온통 감싸듯 쥐고 앉아있는 모습. 커피 온기를 도둑이라도 맞을까 내는 조바심일까요? 미동도 않은 채 시선은 갈대숲 너머 무심한 호수를 그저 꾹 꾹. 아침저녁으로 슬슬 옷자락을 여미게 되는 시월 하순, 어렵사리 온 가을맞이엔 시작부터 커피 한 잔이 달지 싶습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에서 그리고 9호선 한성백제역 2번 출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올림픽공원엘 나왔습니다. 그 옛날 한성시대 백제의 왕궁 터로도 이야기되는 몽촌토성을 품고 있으며, 한성백제박물관과 소마미술관이 이웃해 있는 이곳엔 백범 김구 선생의 묘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남 4문 주차장과 평화의 광장을 지나치자 눈에 쓱 들어오는 모습. 몽촌 토성을 둘러싸고 있던 해자를 재현해 놓은 몽촌호가 맨 먼저 반겨주는 가을 풍경입니다. 수심도 알 수 없고 파문조차 일지 않는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갈대밭 호수를 따라 조용히 가을 길을 재촉해 봅니다.
오간수문을 닮은 곰말다리를 지나면서 옛 백제의 흔적을 거슬러 오릅니다. 그 유명한 '나 홀로 나무'도 바로일 테지요. 역시나 주변엔 인증숏 건지려 나온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답니다. 그러나 정작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따로 있었단 사실. 수령 580년의 은행나무!
서울에서 만난 은행나무 중 최고령. 종로구 행촌동에 소재한 딜쿠샤 입구에도 400여 년 수령의 보호수가 있는데, 무려 100여 년을 더 앞서 태어난 고목입니다. 한껏 품어보고 팠는데 둘러쳐진 보호막 탓에 눈으로만 가득 담습니다. PC 배경화면으로 딱이네요. 득템 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리드미컬한 산책로를 따라 걷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굳이 이정표가 필요 없는 곳. 그 길을 따라서 칠지도 계단을 내려 밟고서 한성백제박물관 쪽으로 내려오면 몽촌호를 한 바퀴 완보하는 셈. (야생화 단지 등 더 둘러볼 것이 많지만)
10월의 어느 흐린 날에도 쉬이 놓아주기가 참 힘이 드는 계절이 가을입니다. 그 남자의 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