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Jul 04. 2024

기술영업의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

국제규격을 알아야 기술영업이 보인다

대화의 시작: 국제규격의 이해

ISO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까요? 분명 품질에 관련된 기술영업을 하다보면 ISO 9001, 14001, 45001 을 마주한 적이 있을 겁니다. (품질인증과 관련된 규격입다) 특히 ISO는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제조업체라면 반드시 품질 측면에서 ISO인증, ISO승인 등등의 용어로 국제적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출처: ISO logo, official homepage


ISO에서 발표한 ISO요약집에 따르면, ISO는 실용적이고 최적의 방안을 규격화 한 기입니다. 특히 어떤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협의된 기준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공식적으로 채택되곤 합니다. 간혹 대륙별로 적용 규격에 차이가 있어 ISO의 적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ISO 스탠다드를 따른다고 하면 논란이 최소화되곤 합니다.

출처: ISO in brief_2018


그렇다면 기술영업이 어려운 이유에서 왜 ISO에 대해 얘기를 하냐구요?


ISO와 같이 시장에서 통용되는 규격을 모르면, 기술영업을 하면서 만나는 고객과의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팔려는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되는 규격을 알아야만 어떤 고객에게 가서 어떤 제품을 팔아야 지가 명확해집니다.


특히 대기업과 같이 규모가 큰 기업에서 대규모 건설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건설프로젝트에는 설계부터 토목, 각종 고정장치, 회전기기 제작, 페인팅까지 모든 분야에서 '규격'없이 대화가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각종 검사의 기준까지 전부 '규격'으로 점철되어 있는 분야가 바로 기술영업이 마주하는 곳입니다.

Painting Inspection Criteria (페인트 검사 기준) 테스트 종류별 적용 규격이 명시되어 있다. 면적에 따른 검사횟수까지 적혀있다.



고객에게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규격

국내 화학산단에 정유사로 페인트 기술영업을 갔을 때 일화입니다.


각종 보수 및 신규플랜트 공사에 들어가는 페인트 사양을 결정하는 공무팀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공가장 골머리를 썩히고 있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공무팀의 역사는 깊었지만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사용하는 규격이나 종류가 달라지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품질이 일정할 수 있도록, 업계에서 통용되는 특정 기준에 따라 페인트 사양을 못 박아 버리고 싶어했습니다.


해당 업계에서 위와 같은 문의를 들으면 일반적인 영업인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 어떤 곳에 바를 페인트 사양이 필요하실까요?

- 기름탱크 내부라면 A페인트를 바르시면 됩니다.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대신 저는 담당자에게 현재 공무팀에서 사용하고 있는 규격이 담긴 기준서(Painting Specification)과 현재 보수가 필요한 부분을 표시한 공장 내 시설배치도를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자는 왜 해당 자료를 달라고 하는지 궁금해하며 요청한 대로 보수가 필요한 각종 시설물들을 표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해당 시설배치도 옆에 ISO 12944-5 Corrosion protection 규격을 활용해 간략하게 페인팅 스펙을 만들어 준 후 다음날까지 모든 시설물에 적용가능한 세부적인 스펙을 짜서 담당자에게 전달했습니다.


담당자는 여태껏 영업하러 오면 페인트 한두말 팔 생각으로 질문을 받았었는데 공장 전체에 들어갈 스펙을 만들어서 하루만에 가져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해당 스펙을 가지고 직속상사에게 함께가서 브리핑 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해당 화학회사의 다음 신규 플랜트 공사 전체에 해당 페인트 사양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공무팀장은 화공엔지니어 출신이라 규격으로 하는 대화에 익숙한 분이었습니다)


기술영업에서 사양을 통해 제품을 지정해버리면 일종의 단독입찰 권한이 생깁니다. 즉 경쟁사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기술장벽을 세운 겁니다. 물론 반대로 경쟁사 입장이 되어 이런 기술장벽을 마주한다면 피해갈 방법이야 찾을 수 있지만 한번 세워진 기술장벽을 뚫고 들어가는 건 생각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제규격을 활용한 전략적 영업방법

이처럼 규격을 활용해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처럼 대기업 공무팀이 아닌 제조업 설계팀이나 품질팀을 만나 공정과정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규격없이는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많습니다.


따라서 기술영업을 처음시작하는 입장이라면, 해당 분야에서 통용되는 각종 규격을 반드시 습득하시길 바랍니다. 특히나 이런 국제규격들은 매년 혹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되므로 가능하면 최신버전을 습득하거나 변천사를 알고 있으면 영업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간혹 큰 변화가 있는 경우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들이나 방법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들어 환경규제가 추가되거나 한다면 기존에 잘 사용하던 제품이 규격에서 사라지거나 하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르나 납이 들어갔던 페인트는 안전 및 환경문제로 인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되었거나 업데이트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사양서들을 보면 여전히 타르를 사용하는 페인트가 허용된 경우가 있습니다.


Epoxy Coal Tar가 표기된 페인트사양 (Coal Tar가 들어간 페인트는 글로벌 페인트 제조사들이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이런 스펙을 갖고 있는 고객사가 현장에서 Coal Tar가 들어간 페인트를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 Coal Tar가 들어간 페인트는 사용자의 안전과 환경문제로 각 제조자들이 더 이상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스펙을 보니 발주처에서 해당 부분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나봅니다. 

- 동일한 사양으로 ISO 12944-5를 적용해 Epoxy paint를 적용하면 문제없이 공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자료를 발주처에 제출해 사양변경 승인을 득해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접근은 비단 페인트에 국한되지 않고 기술영업이라고 불리우며 국제규격이 적용되는 많은 영업분야에서 통용됩니다. 그리고 ISO뿐만 아니라 ASTM, ANSI, IEC 등등 국제규격의 종류는 적용되는 분야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기술영업에 관심이 있다면 해당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규격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P.S 글을 끝마치려다보니 대부분의 국제규격들은 온라인 상에 공개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빼먹었습니다. 이러한 비공개성이 기술영업을 어렵게 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규격 하나 보려고 하면, 예를 들어, ISO 공식홈페이지에서 적게는 몇십불부터 많게는 1000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규격을 구매해야만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영업에 관심을 가지는 입장이라면 업계에서 통용되는 규격이 무엇인지 현직자에게 물어보거나 어떤 규격이다 정도만 알고 있어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전 01화 B2B 기술영업이 어려운 진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