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회사와 회사 간 거래) 영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초대형 거래처에 '처음' 간 적이 있었다. 해당 거래처에 안면이 있는 팀장님과 동행했던 터라 실무자끼리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실무자를 A라고 하자)대형고객사의 실무자를 알게 되어 조금 더 친해지고 제품을 소개하다보면 우리제품도 납품할 수 있겠거니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내 꿈은 그저 치기 어린 신입사원의 패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무자인 A로부터는 자주 견적이나 제품스펙 문의가 왔다. 스펙에 등재해야 하니까 관련 제품 카탈로그나 추천제품의 성적서 등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요구조건에 충족할만한 경쟁사 제품까지 비교해서 비교표도 만들어서 보내주고, 경쟁사 단가도 파악해 견적도 유리하게 제시하곤 했다. 하지만 1개월, 반년, 1년이 지나도록 해당업체에 제품을 한 톨도 팔지 못했다.
팀장님한테 해당 고객처에는 아무리 대응하고 친해지려고 해도 도통 제품을 써주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자 그제서야 해당 거래처에 대한 묵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경쟁사와 관계가 끈끈해서 우리가 아무리 해봤자 담당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 제품을 써주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분기마다 경쟁사 영업담당자와 골프도 치러가고, 우리보다 훨씬 자주보면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 물량수주에 따른 페이백도 제공한다고 했다. 회사 정책상 페이백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접대활동이 금지되어 있어 정말 제품력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우리 입장에선 넘을 수 없는 산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A와 몇번 만나면서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긴 했었다.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항상 '이렇게 하셔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라든지, '경쟁사보다 미친듯이 낮은 가격을 가져오셔도 될까말까입니다' 라든지 하는 발언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해당 고객사의 담당부서는 매출규모가 매우 크진 않았지만 특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제품을 보유하고 있어 실적으로 포장하기에도 좋고, 글로벌에서 항상 관심을 가지는 고객사여서 꼭 대형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알고 나니 차라리 이 회사에 공을 들일 시간에 신규거래처를 개발하거나 지금 있는 거래처에 더 집중해서 매출규모를 키웠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관계(X)' '[좋은]관계(O)'
B2B영업을 하다보면 반드시 이런 순간을 맞이한다. 대형고객사들은 저마다 끼고 있는 벤더(Vendor)나 공급사(Supplier)가 다수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맞아 친하고 선호하는 거래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미 10년, 20년 지속된 관계를 이제 갓 관계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와해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시황이나 특수한 시점에서 오래지속되던 관계에 틈이 생겨 비집고 들어가는 경우도 왕왕 생기지만 그만큼 목표로 하는 기업에 관심과 시간을 이미 할애하고 있는 상태여야 포착가능한 기회들이다.
반대로 우리 회사의 고객사나 내 고객사가 나와 좋은 유대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면, 새로 유입되는 경쟁사 측에서 우리 관계를 와해시키고 접근하기란 또다른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게 분명하다.
온라인 상에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 B2B기술영업 시장에서는 '관계'야 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된다. 관계 속에서 정말 중요한 정보가 오가고, 가볍게 서로 점심을 먹다가 프로젝트 정보를 얻고 수주가 결정되곤 하니까 말이다.
B2B기술영업 길라잡이!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아무리 단단한 관계여도 예기치 못한 시황이나 특정 시점에 반드시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어떤 시황이나 시점에 기회가 생기는지 다른 글에서 추가로 다뤄보려 한다.
기술영업을 하면서 어떻게 고객사와 신뢰를 쌓고,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지, 경쟁사보다 내게 유리한 상황을 어떻게 만드는지 등 기술영업에서 활용하고 도움이 될만한 정보나 노하우를 공유할 예정이다.
특히나 경험담에 따른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기술영업 업계에 여러 경험담을 통해 이제 막 기술영업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길라잡이가 되고, 오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또다른 관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