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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Nov 18. 2023

편두통이에요.

'편두통'임을 알게 된 건, 미국에서 돌아온 후였다. 어릴 때부터 아플 때마다 갔던 단골 동네 내과가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에게 머리가 이렇게, 저렇게 자주 아픔을 말씀드렸더니 편두통이라 했다. 그리고 약을 처방해 줬는데, 편두통이 오면 오심도 같이 오니 속을 진정시키는 약과, 진통제, 그리고 신경안정제가 있었다. 신경안정제는 내가 두통이 오면 어지럽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더니 같이 처방해 줬는데, 온전한 알약 한 알이 아니라 반쪽 정도였던 것 같다. 


22살 초겨울쯤 받은 편두통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문 편두통약보다는, 두통약과 여러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같이 넣었으니 조제약에 가까운 개념 같다. 두통을 진정시키는 진통제는 시뻘겋다 못해 짙은 자주색을 띠는 약간 '뭐지?' 싶은 크고 길쭉한 약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차피 매일 먹는 약은 아니고 아플 때마다 먹는 약이니 7일치를 지어주겠다 했고, 감기와 편두통, 혹은 다른 병으로 인한 두통과 편두통을 잘 구분해서 약을 먹으랬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편두통과 감기 두통, 다른 병으로 오는 두통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약국에서 7일 치의 편두통약(7일치라면 하루 3봉 x7일이니 21개의 약을 받은 거다.)을 받아 들고 계산을 위해 앉아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두 분이 내 약을 물끄러미 보더니 '약 색이 알록달록하면 독한 약이다.'라는 말을 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지어준 두통약은 나한테 잘 맞았다. 굉장히 아플 때마다 먹었는데, 대부분의 두통은 1시간 안짝으로 가라앉았다. 효과가 아주 빠르고 좋았다. 약이 독한 건지 약만 먹으면 약간 어지럽고, 잠깐. 어지럽다는 표현보다 뭐랄까, 나른하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과 손끝까지 약간 저린 느낌이 들었다. 전신이 나른 나른하니 잠도 잘 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진통제 중독이 마약 중독과 비슷하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예전에 아주 잠깐이나마 왜 중독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약을 복용한 지, 어언 10년이 된 것 같다. 그 사이 신경안정제는 나에게 불필요한 약이라 생각해서 빼고 복용하다 아예 빼달라 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빨갛다 못해 자주색을 띤 길쭉한 알약은 약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미가펜'이었다. 미가펜에 사용된 이소메텝텐뮤케이트 성분은 마이드린과 아이디라는 약에도 포함돼 있었지만,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이소메텝텐뮤케이트 성분의 약들이 단종된 후였다. 


그리고 약을 복용하는 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빨갛고 자주색이고 길쭉한 미가펜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져 갔다. 사실 그 약이 '미가펜'이라는 걸 안 것도 코로나19가 터진 이후였기 때문에, 편두통 약이라 생각했던 조제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조제약에 대한 의존도, 그리고 나는 조제약만 있으면 두통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 편두통 진단 후 '편두통'에 대해 굉장히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10년 정도 지속됐다. 그래도 대학을 다니고, 인턴을 하고, 우울하고 불안했던 취준생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조제약 덕분에 버틸 수 있었기에, 높아진 의존도도 어느 정도 당연하다 생각하고,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미가펜이 있어 그나마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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