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평소에 생일을 그렇게 특별한 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선물 받을 생각에 조금은 특별한 날이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일도 그냥 여러 날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모든 기념일에 무뎌진 게 딱 취업을 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20대 중후반까지는 그래도 제 삶에 낭만이라는 게 제법 있었어요. 그 당시에 쓴 글을 보면, 생일을 포함해서 크리스마스나 연말도 즐기려 무던히 노력했거든요. 그 노력이란 게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거창하게 파티를 하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 시즌에만 나오는 음료를 마시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거나. 굿즈를 여럿 사서 모은다거나, 행사에 기웃거려 본다거나. 죄다 돈 쓰는 일이긴 한데, 저런 사소함이 주는 행복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그게 없어졌어요. 생각해 보면 요즘 혈당이니 뭐니, 모두가 건강박사가 됐다 보니 시즌음료는 도전하기보다 눈길만 주게 된 것 같고. 자취니 뭐니, 두 집 살림을 한 시점부터 '짐이 늘어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야말로 낭만이 사라졌어요. 생일도 그런 거 같아요. 생일 없는 사람 없잖아요? 우리 모두 출생신고가 됐으니까요. '탄생', '존재의 기쁨'이라는 낭만이 사라지니까, 그저 그런 날 중의 하나가 된 거죠. 제 생일은 6월 27일인데, 그날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겠어요. 그중의 하나가 저인 거죠.
그런데 엄마 생일에, 엄마 친구가 편지를 써 준거예요. 엄마 생일은 7월이거든요. 아빠, 엄마, 저, 이렇게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깔깔 웃으며 생일 편지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어요.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첫 문구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저 말이 왜인지 모르겠는데 너무 따뜻하게 들리는 거예요. '생일은 참 좋은 거야.' '생일은 참 좋은 거야.' 지금 되새겨봐도 너무 좋고 따뜻한 말이에요. 밥알과 같이 곱씹어보니, 정말 생일은 참 좋은 거더라고요. 탄생이 있고, 생일이 있고,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고, 그리고 또 이렇게 글도 쓰고. 제 존재 자체가 세상에 있다는 거, 그러니까 생일은 참 좋은 거예요.
누구나 자극적이고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높낮이 없는 파도처럼 잔잔하죠. 저는 이게 일상이라 생각해요. 미친 듯이 행복하고, 미친 듯이 슬프고. 이런 삶은 도파민 흘러넘치는 조금 기이한 삶 아니겠어요? 특히나 회사원은 회색지대 같은 삶을 살아가는데요. 저처럼 이날도 저 날도 다 비슷해서 무감각한 사람이 있다면, 저는 꼭 말해주고 싶어요.
"생일은 참 좋은 거야. 태어나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