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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May 28. 2024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를 샤라웃했다

하민이가 날 불러준 순간, 나는 칭찬 감옥의 수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평소보다 일이 많은 월요일 저녁이었다. 보통은 저녁 7시면 퇴근인데 그날따라 할 게 너무 많았다. 오늘 플레이브의 라디오 첫 방송 날인데... 갈등이 일었다. 일은 해야겠고, 라디오도 놓치긴 싫고. 빠르게 집중해서 일을 끝내려다 아무래도 1시간 안엔 못할 것 같아 그냥 천천히 하자는 생각으로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라디오를 틀었다. 그러고는 모니터를 한참 동안 쳐다보는데 집중이 잘 될리가 있나. 눈은 모니터에 가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오른쪽 귀에 초집중됐다.


플레이브가 자체 라디오 방송 '플레이디오'를 시작했다


오늘은 플레이브(Plave)의 라디오 첫 방송 날이었다. 첫 DJ는 플레이브의 막내 하민이었다. 워낙에 진행을 잘 하는 멤버라 첫 타자로 나올 줄 알고 있었다. 하민이는 플레이브에서 제일 어리지만 가장 진행을 매끄럽게 잘하는 멤버이기 때문이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잘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기본적으로 잘한다. 전체적인 방송의 흐름을 읽고 멤버들이 종종 다른 방향으로 너무 뻗어나가면 잡아주기도 한다. 적재적소에 센스있는 멘트도 던질 줄 알고, 원활한 방송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잘 잡아주는 멤버다. 그래서 플레이브 라이브 방송에서도 항상 MC를 도맡아왔다.


라디오 1부는 하민 DJ(aka 빛하민D)의 사연 소개 시간이었다. 플레이브 팬들에게 받은 사연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나도 사실 사연을 보냈다. 일주일 전 쯤인가 위버스에서 플레이브가 라디오를 론칭한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구글 폼에 사연을 받는다는 공지가 떴기 때문이다. 사연의 주제는 '칭찬'이었다. 칭찬받을만한 일을 짧고 가볍게 써주면 하민 DJ가 사연을 선정해서 칭찬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플레이브가 내 사연을 읽어줄까. 기왕이면 뽑힐 수 있도록 임팩트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다. 퇴근길 내내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싸맸다.


그런데 도무지 생각해봐도 신박한 게 떠오르질 않았다. 나의 오늘 하루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다지 칭찬받을 만한 일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지하철에서 건너편에 계시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이야기를 할까,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줬던 이야기를 할까. 생각해보면 모두 조금은 평범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들 같았다. 그래서 그냥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났던 가장 인상적인 일에 대해서 써볼까 싶었다. 그럼 단연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플레이브의 팬클럽 1기 가입이었다.


위버스에서 판매하는 플레이브의 1기 팬클럽(왼)과 멤버십 키트다


플레이브 팬클럽 1기 회원이 된 기쁜 마음을 멤버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라디오 사연 응모가 올라오던 날은 플레이브의 공식 팬클럽 '플리'의 1기 추가 모집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당일 모집 시작 시간에 알람까지 맞춰놓고 기다리던 나는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초고속으로 구매에 결제까지 완료했다. 공식 팬클럽만 살 수 있다는 팬클럽 키트 구매도 잊지 않았다. 가입하고 나서 처음으로 위버스 커뮤니티에 글도 써봤다. 팬클럽이 되면 위버스에 글을 쓸 때마다 아이디 옆에 '플리'라는 하트 모양의 뱃지가 달린다. 늦었지만 추가 모집 기간에 가입할 수 있었던 나의 기쁨을 담아, 이번 팬클럽 가입으로 플레이브와 공식적인 사이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썼다.


사연 모집 구글폼에 이 이야기를 써서 사연으로 보냈다.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 소개될만한 내용일까? 사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나 말고도 오늘만을 기다리고 가입했던 플리들이 많았을 테니까. 그래서 아마도 나와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쓴 플리들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났던 가장 행복하고 기억하고 싶은 이벤트는 그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소개되지 않더라도 이 마음을 플레이브 멤버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썼다. 그렇게 사연을 남겼다.


일주일이 흐르고 다시 라디오를 듣던 저녁으로 돌아가서, 한참 라디오 듣느라 마우스 키보드만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혹시나 내 사연이 소개되지는 않을까 하는 1%의 기대를 걸면서. 1부는 거의 끝나가는데 내 사연은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그래. 이런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건 아니지. 플리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연은 또 얼마나 많았을 텐데! 내 사연이 뽑힐리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는 각잡고 고민해서 다시 보낸다! 이런 다짐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하민 DJ가 말했다. "네 다음은 오늘 칭찬 감옥의 마지막 입주입니다. 콩딘이 님의 사연입니다."


플레이브의 라디오 방송, 플레이디오. 내 사연은 30:40 즈음에 나온다.


믿기지 않게도 하민이가 마지막 사연으로 내 이야기를 했다


콩딘이는 내 아이디다. 눈이 동글동글하고 눈썹과 머리카락이 꼭 까만 콩처럼 새까맣다고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써왔던 아이디였다. 플레이브 팬클럽에 가입하면서도 딱히 아이디를 바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다른 팬들은 멤버들의 이름이나 별명이 연상되는 아이디를 따로 만드는데, 오랜시간 이런 팬 문화에 동떨어져 있던 나는 그냥 평소에 쓰던 아이디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왕 제대로 활동할거라면 부캐처럼 다른 이름을 고민해봐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마지막 사연으로 하민이가 내 아이디를 불러준 것이다. 하민이는 내가 적어놓은 사연을 그대로 읽어줬다. "오늘 플레이브 공식 팬클럽 가입했어요. 키트도 빠르게 구매! 이제 플레이브 멤버들이랑 저랑은 공식적인 사이가 되어버린 겁니다! 저 잘했죠?" 내가 보낸 그대로였다. 그때 나는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도 안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거진 퇴근하고 몇 명 안 남아서 조용하던 오피스에서 나 혼자 그냥 숨이 턱 막혀버렸다. '헉'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아이디가 불리고, 사연이 소개되는 와중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플레이브 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들어가서 내 사연이 소개되고 있음을 알렸다. 다정한 단톡방 사람들은 내 이름이 불린 걸 자기 일처럼 기뻐해줬다. 그런데 하민이가 사연을 읽어주고 나서 뭐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냥 말미에 하민이가 했던 이 말만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콩딘아 사랑해. 칭찬 감옥에 가둬!"


뭐야 이거 지금, 하민이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한거야?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부럽다며, 이제 하민이의 칭찬 감옥에서 평플(평생 플레이브와 함께한다의 줄임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프로필 사진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들 했다. (내 프로필 사진은 최애인 밤비로 돼 있었다.) 순간적으로 진짜 프사부터 하민이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야근 때문에 느꼈던 피로가 갑자기 싹 잊혀지고 빠르게 도파민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귀여운 빛하민D :)


이런 경험은 내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10대때 아이돌을 열광적으로 좋아했을 때도 단 한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생경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게 신의 뜻(?)이구나 싶었다. 나한테 평생 플레이브의 팬으로서 본분을 다하라는 신의 뜻 말이다. 나는 라디오 방송이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 신이 난 나머지 일은 어느새 까맣게 잊고, 머글 친구들의 단톡방에도 자랑을 하며 축하를 받았고 남편에게는 따로 전화까지 걸었다. 어디 또 자랑할데 없나 싶도록 동네방네 퍼트리고 싶었다. '여러분 하민이가 저한테 사랑한대요!'라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한 시간대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 옆자리, 뒷자리, 앞자리에 앉아있는 직원들한테도 다 말하며 주책을 부릴 뻔했다.


나중에 진정하고 재방송을 들어보니 하민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콩딘이 이름 기억할 테니까, 어디 가지 마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자요. 콩딘아 사랑해! 칭찬감옥에 가둬!" 어쩜 말도 이렇게 이쁘게 하는지. '그래 하민아, 누나 어디 안 갈게. 항상 옆에서 플레이브를 사랑하고 응원할게!' 마음속으로 수백번 외쳤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둔 칭찬 감옥에서 기꺼이 종신형을 받은 수감자로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다만 몇 시간 전에 벌어진 일인데도 여전히 그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일을 생각하면 행복 바이러스가 다시 온 몸에 퍼지는 것만 같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에게 기운 내라며 찾아온 플레이브의 선물인 것만 같아서 더 기운이 나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사랑 고백을 받아버린 이상, 최애를 밤비에서 하민이로 갈아타야하려나?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플레이브 덕에 그동안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모두 털어버리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저 행복한 하루로만 기억될 수 있는 오후를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빛하민D,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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