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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딘이 Aug 24. 2024

유부녀가 아이돌을 좋아해도 될까

플레이브를 향한 팬심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일까

플레이브(Plave) 덕질 5개월차. 최근에 멤버들이 컴백까지 하면서 해야할 것도 챙겨봐야할 것도 늘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새로 나온 공식 굿즈들도 사야하고, 컴백했으니까 신곡 스밍도 돌려야 한다. 매주 올라오는 라이브 방송과 자체 컨텐츠도 놓칠 수 없다. 입덕 초반에는 얼마 안되는 굿즈들이 너무나도 소중해 올라오자마자 바로 구매했었는데, 이제는 굿즈들도 꼭 필요한 것만 사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굿즈 존을 볼 때마다 괜시리 남편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택배가 도착하면 뭐냐고 물어보는 남편에게 '또 플레이브 굿즈'라고 대답하기 민망한 상황들이 자주 연출되곤 한다. 


사실 내가 민망해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돌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아이돌 노래만 간간이 찾아 듣던 사람이었는데 결혼 후 어느 순간부터 플레이브 노래만 듣고, 그들을 위해 돈과 시간을 열성적으로 쓰는 아이돌 팬이 된 것이다.


반대로, 남편은 아이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얼마나 문외한이냐면, 한 번은 가수 아이유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영화가 중반쯤 지나 아이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남편이 갑자기 내게 귓속말로 "저 사람이 아이유였어?"라며 놀라는 것이다. 아이돌에 대해 잘 모른다고는 했지만, 설마 아이유도 모른다고? 싶어서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이돌 팬들을 무시하거나 한심하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내의 덕질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일상에 충실한 공대 출신 연구원일 뿐.


그래서 그렇게 플레이브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눈치만 보고 있던 찰나, 도화선이 될만한 사건이 하나 생겼다. 바로 동네에서 플레이브 덕질 메이트들을 사귀게 된 것이다. (덕질 메이트란 함께 아이돌을 덕질하는 친구들이다.) 공식 굿즈를 구매하려는데 배송비가 너무 비싸 당근에서 함께 공동 구매할 플리들을 찾다가 동네 덕질 메이트들을 만나게 됐다. 신기하게도 나를 포함해 그들 모두 직장인 신분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덕심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공감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 대해 공감대를 주고 받던 우리는 이렇게 만나게 된 김에 오프라인에서 뭉치기로 했다. 그리고 첫 오프라인 만남에서 그동안 마음 속으로만 품어왔던, 온라인으로는 해소되기 어려웠던 덕심을 풀어냈고, 그 자리에서 또 한 번의 약속을 잡게 됐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의 반응이었다. 처음에 동네 플리들을 만나고 오겠다고 했을 때는 재밌겠다며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했던 그가 두 번째 모임을 잡았다는 말에는 꼭 가야하냐고 되물었다. 첫 번째 만남처럼 흔쾌히 보내줄 줄 알았던 나는 남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동안 플레이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낼 때마다 못말린다며 웃어 넘겼던 그가 이번에는 너무도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나를 못가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플레이브를 좋아하는거야?" 씁쓸하게 묻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달려가 남편을 안아주며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달래줬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는거면 가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속으로는 남편이 진짜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쩌나 불안했지만, 몇 분 안 남은 약속을 갑자기 취소하라고 할만큼 경우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공수표까지 던졌다. 불안해진 내 얼굴을 본 남편은 일단 약속한 건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간 김에 재미있게 놀고 오라고 마지못해 보내줬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다. 덕질 메이트들을 만나 플레이브 영상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자꾸 머릿속에는 남편의 그 말 한 마디만 맴돌았다. 그리고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마음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일까. 정신적 외도 같은 것은 아닐까. 그동안 남편 앞에서 플레이브 이야기를 하거나, 굿즈를 구매하는 행동들이 민망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10대때 아이돌에 빠져 있을 때는 연애한 적이 없었고, 줄기차게 연애를 했던 20대때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둘 다를 하는 건 지금이 처음인지라 이 마음을 대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혹시 나 알고보니 두 사람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폴리아모리는 아닐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남편이 내게 주는 사랑이 결코 부족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는 거였다. 플레이브를 알기 전에도 나는 남편과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플레이브가 없어도 살아는 가겠지만 남편이 없으면 나는 더이상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남편은 소중한 존재다. 오히려 플레이브는 없으면 못사는 연인보다는 정말 친구에 가까운 존재다.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정이 쌓여서 더 돈독해지는 친구같은 관계.



플레이브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도 친구를 좋아하게 될 때와 비슷하다. 그들의 외모가 아닌 직접 만든 노래에 빠졌고, 라이브 방송에서 멤버들끼리 노는 모습이 재밌었고, 플레이브 데뷔 1주년 때 가수를 향한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는 팬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니까 플레이브를 향한 마음은 꿈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꿈을 이루고야마는 명랑만화 속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성적인 설렘이 전혀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보단 가수로 잘 되길 응원하는 팬의 마음이 더 큰 상태였다. 버추얼이라는 낯선 장르를 주류로 바꾸고 있는 멤버들이 국내를 넘어 해외 빌보드에서도 인정받는 가수로 성장했으면 좋겠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그러니까 '멤버들과 사귀고 싶다'가 아니라 '그들이 가수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게 내가 바라는 목표인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있잖아 내가 플레이브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나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럼 당연하지! 이성적으로 좋아하려던 거였어? 그건 당연히 안되지" 이미 그는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던 건가. 괜히 혼자 진지하게 고민했던 게 민망해져서 웃으며 남편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소홀했다면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내가 더 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도 미소 지으면서 나를 꼭 안아줬다. 마음속에 얹혀있던 무거운 돌 하나가 내려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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