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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02. 2020

전쟁을 막는 경제 이론의 발전

홍춘욱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일컫는 말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나고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미국에 의해 세계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에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탄생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기까지 이 체계가 지속되었다.

 우리나라는 비록 분단국가이지만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약 70년 동안 남북 간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처럼 국지적인 전쟁은 있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근대 사회까지 끊이지 않던 전쟁이 멈춘 이유가 여러 사회적인 영향도 있었겠지만, 경제 이론의 발전이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경제 이론이 발전하면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 위기는 디플레이션을 말한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홍춘욱 작가의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에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살펴보기에 앞서, 디플레이션(이하 디플레)이 무엇인지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면 같은 작가의 전작 <디플레 전쟁>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시간이 없다면 저의 부족한 서평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디플레이션부터 벗어나야 한다 (brunch.co.kr)

전근대 사회에 전쟁이 빈발했던 이유는 상대가 가진 것을 약탈하기 위한 욕망뿐만 아니라 경제 내에 존재하는 만성적인 디플레 위험을 해소시킬 목적도 컸다. 당시의 통치자들은 뚜렷한 실체가 없는 디플레 문제를 직접 다루는 대신, 통제할 수 있고 분명한 목적이 있는 '전쟁'을 치르는 게 정치적으로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국고가 바닥날 때까지 치열한 전쟁을 치를 경우, 승리한다면 당연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패배하면 수나라처럼 멸망하거나 영토를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래도 '농민 반란'의 확실한 위험에 비해서는 나은 선택지라 여겼던 것이다.

홍춘욱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

    전쟁을 일으킬 만큼 디플레가 무섭다는 사실은 책에 나오는 한나라 무제 시절을 소개한다.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는 행운아인 동시에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훌륭한 선대 황제 덕분에 보물과 식량으로 가득 찬 창고를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경제에 심각한 디플레가 발생한 시대를 살았다.
 무제 때 디플레가 발생한 건 '생산력' 회복 때문이었다. 한나라의 5대 황제인 문제 때에는 한나라 초기에 비해 곡물 가격이 1/500 정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 돈의 상대적 가치가 500배 상승한 것이다. 곡물 가격이 내려간 이유는 장기간 이어진 안정기에 버려졌던 땅이 다시 일궈지며 식량 생산이 급격히 늘어난 반면, 동전 생산량이 이에 비례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곡물 가격이 내려간 게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곡물 값의 폭락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을 곤궁하게 한다. 게다가 곡물 가격이 떨어진 상황에서 역병이나 천재지변이 벌어지면, 농민들의 삶은 일거에 붕괴될 위험이 높아진다. 빚을 지고 갚지 못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땅을 버리고 대지주의 소작농이나 상인의 하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는 기원후 2세기 로마에서 벌어진 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사람이 바로 무제였다. 그는 동아시아의 강국 고조선부터 시작해 북방의 영토를 위협하던 흉노를 대상으로 대규모 전쟁을 벌여 경제 내의 디플레 위험을 일거에 털어버렸다.
(...)
 이 대목에서 '전쟁을 치르는 게 어떻게 디플레 문제를 해결할까?'라고 의문을 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100만 대군을 이끌고 왔던 것을 예로 들어보자. 물론 100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 고구려에 직접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 숫자가 내포하고 있는 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데, 인구가 희박한 변경 지역으로 수십만의 부대를 보내기 위해 많은 수송 병력이 필요하고, 또 대운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간접자본의 정비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면 농사지을 인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물론, 군량미 지출이 늘어나 곡물 비축량이 순식간에 줄어들거나 고갈되어 곡물 등 생필품 가격이 다시 상승한다. 물론 무제가 이런 경제 원리를 알고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곡물 가격은 다시 올라갔고 한나라는 다시 부흥기를 누릴 수 있었다.

홍춘욱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디플레를 해소하기 위해 한나라 황제 무제는 전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구시대적 해결책에서 벗어나는 데는 경제학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밀턴 프리드먼이다. (더 많은 경제학자를 알고 싶다면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서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에게도 경제학 지식이 필요할까요? (brunch.co.kr)


경제학계의 구세주, 케인스

 케인스는 시장의 경제 주체가 기업과 개인 밖에 없던 시절에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말한 경제학자다. 그가 말한 유효수요 이론은 고용이 사회의 수요(demand)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실업은 사회 전체에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서 고용이 증가하면 소득이 증가하고,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하지만, 가계는 저축을 하기 때문에 소득의 전부를 지출하지 않는다. 저축으로 생기는 소비와 소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투자의 증가(새로운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효수요 이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투자는 정부가 수행하는 것이다.

 승수 이론은 한 사람의 지출 변화가 국가 지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경제의 연쇄 작용을 설명한 승수 이론은 재정지출로 경기 침체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유효수요 이론과 승수 이론으로 케인스는 정부가 경기 침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케인스주의자들의 자문을 받은 정치가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뿌리치고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경기 순환과 싸우기 시작했다. 경기가 둔화되면, 그들은 연방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 삭감을 통해 경기를 진작시켰다. 물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일시적인 재정 적자는 피할 수 없다. 반대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하면, 그들은 세금을 올리거나 연방 지출 삭감을 통해 경기 과열 현상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정부 예산은 균형을 이루거나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p.431

경제 주체들이 돈을 쓰지 않으려는 심리인 디플레를 정부가 주도하여 수요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케인스의 승수 이론부터 시작하였다. 디플레를 벗어나려고 전쟁을 일으키는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케인스에 반기를 든 통화주의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

 케인스는 재정지출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주의로 케인스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통화주의자는 케인스주의자를 두 가지 이유로 비판했다. 정부는 훌륭한 운전자가 되지 못하며, 경제의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는 재정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통화주의자들은 경제의 가속 페달이 화폐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며, 운전석에는 Fed(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통화주의도 케인스주의자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케인스주의자들은 통화 정책이 제대로 먹히려면 화폐의 유통 속도 또는 화폐 수요가 안정적이어야 하며 돈을 빌려 쓰는 사람이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화폐가 제대로 돌지 않고, 대중이 금리 변화에 둔감하면 통화 정책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자와 통화주의자들의 싸움은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오늘날 케인스주의자들과 통화주의자들의 승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승부다. 이하에서 우리는 미국의 연방 정부가 국민 경제를 네 개의 페달을 가진, 즉 가속 페달 2개와 브레이크 2개를 가진 자동차로 간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
밀턴 프리드먼과 폴 새뮤얼슨을 잇는 신세대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를 분명하게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리드먼의 통화 정책과 케인스의 재정 정책이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케인스주의자와 통화주의자들의 이론이 모두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번 코로나 19로 경제 위기를 겪을 당시의 뉴스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세계의 모든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시기에 연준(Fed)은 금리를 제로 금리까지 낮추었으며, 자산을 7조 달러까지 매입한다. 미국 정부는 2.2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며 시장은 'V자 반등'을 하며 자산 붕괴의 충격에서 벗어 나올 수 있었다.

(좌) 연준의 총 자산, (우) V자 반등을 한 나스닥 지수

 전쟁은 '무역 전쟁 → 금융 전쟁 → 무력 전쟁'순서로 일어난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전근대 사회까지 갈등이 발생하면 무역과 금융 전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무력 전쟁으로 발발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무력 전쟁 전에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충격을 받은 2020년이다. 코로나 19로 세계가 고통받고 있던 올해 상반기에 연준의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재정정책)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경제의 활력을 잃는 디플레가 만연해 있었을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무력 갈등까지 초래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케인스와 프리드먼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경제 이론이 평화를 뒷받침해준다.

 현재까지도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한 디플레를 막기 위해 경제 주체들이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충격과 상흔은 남겠지만 경제이론으로 전쟁을 막은 것처럼, 인류는 앞으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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