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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르 Mar 02. 2018

4_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다

모든 강줄기는 바다에서 만난다. 책도 마찬가지다.하지만 나는 몰랐다. 통섭, 융합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던 때였지만 나에게는 그저 일반명사였을뿐 가슴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저자들의 강연에서 멋있는 얘기를 들으면 오, 모든 학문은 연걸되어 있구나.하고 감탄했지만 그건 시골쥐가 서울쥐에게 듣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내 발로 밟아보지 못했으니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뿐 그 땅을 두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그 단어들을 가슴으로 이해한 것은 책 읽기를 시작하고 한 참이 지난 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모두가 지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습관이란 식습관과 여러모로 비슷해서 편식하기 쉽다. SF소설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만 읽고 경제경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그 분야만 읽는다.


하지만 나는 손끝에 잡히는 것부터 읽었다. 뭘 읽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은 철학, 내일은 과학, 다음날은 문화나 읽어볼까. 제목에 꽂혀서 읽기 시작한 책도 있고 표지에 매료되어 읽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매일 다른 장르의 책을 읽었고 결론적으로 그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나는 백일몽을 자주꾸는 소녀였다. 현실이 지겹거나 힘들때면 아마득한 심연같은 것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싶었다. 입시는 끝이 없어 보였다. 아둥바둥 시험을 쳐서 대학에 가면 그 후에는 일을 해야 할 테고 그 후에는 또... 현실은 멈출 줄 모르는 열차 같았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영문도 모른 채 열차에 올라타서 끊임없이 연료를 떼야 한다니. 나는 그 여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이 지겨워졌다.


대학 테이블에서 처음 만난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는 소녀였던 나에게 모종의 이유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는 하나의 거대한 ‘의지’만이 존재했다. 어느 날 이 의지는 개별화라는 작동법칙에 따라서 자신을 쪼개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의지의 조각난 파편들이다. 파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욕망한다. 그런데 그 욕망하는 것들이 다 달라서 투쟁하고 갈등하고 서로를 죽인다. 유일하게 평온했던 시기는 우리가 모두 갈라지기 전 하나의 의지였던 순간 뿐이다. 그 때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세계라는 것도 없다.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이야기다. 플로토니우스의 일자가 떠오르면서 오호, 그렇구나.하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몇 주 뒤 나는 과학책을 읽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는 태어나서 한 동안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자아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태아인 아기에게 세상은 따뜻한 엄마의 뱃속 자궁이다. 그 곳은 어떤 지상낙원을 초월할 만큼 평온하고 아늑하다. 자궁 속에서 아기는 엄마와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 엄마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엄마이자 이 뱃속이 곧 나인 세계. 거기에서 아기는 자아와 세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다. 아! 얼마 전 만났던 쇼펜하우어가 떠올랐다. 모두 하나의 의지였던, 완벽하게 평온했던 그 순간! 태아였던 아이는 그 하나의 의지에서 분리되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탯줄이 잘리는 순간 모든 것들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무언가를 욕망하는 쳇바퀴. 그 쳇바퀴에 올라서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뇌과학 사이에 시냅스가 연결되면서 지적 도파민이 생성됐다. 도파민은 대표 쾌락 호르몬 중 하나다. 독서를 하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사실 이것은 아주 작은 예시다. 모든 책은 연결될 수 있다. 특히 과학과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연결고리가 더욱 많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연결되는 책들이 많아질수록 책읽기는 더 흥미진진해졌다. 그래서 에버노트를 시작했다. 그냥 덮어버리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한 권씩 정리했다. 무늬만 학생이지 백수여서 할 일도 없었고 만나는 친구들에게 연결된 내용들을 설명해줬다. 현상학에서 판단정지,라고 하는 게 불교의 관조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애, 이러쿵 저러쿵.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나누고 싶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레스토랑에서 뭘 먹었다며 수다떠는 것처럼. 내가 좋았던 걸 남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마이크 임팩트 강의를 들었다.데니스 홍, 박웅현씨, 김영하 작가 등 여러 사람들이 나왔는데 그들의 이야기에는 통섭이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어슴푸레하게 느끼던 것을 공감받는 것 같아 기뻤다. 아, 내가 느낀 게 저런 거였구나.


스티브 잡스는 창의력이란 단지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연결할 재료가 풍부하느냐, 단지 그것 뿐이다.


나는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여러번 감탄했는데 그건 단순히 칼 세이건의 헤아릴 수 없는 과학적 정보력이나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책에는 각 챕터의 서두마다 인용된 여러 글귀가 있다. 그런데 그 출처가 세네카,데모크리토스같은 철학자 뿐만 아니라 내가 존경하는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코란 심지어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까지 아주 풍부했다. 통섭을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하겠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칼 세이건은 모든 책이 연결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나는 그가 가진 우주만큼 넓은 호기심과 박학다식함을 사랑한다.


다시 스티브 잡스로 돌아와서 재료를 얻는 것. 그 점에서 책은 아주 훌륭한 장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작은 물건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까. 이제 책을 펼쳐 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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