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브로톤사우르스, 생각의 지도, 코스모스, 미학 오디세이. 어떤 비문학을 읽을까,하고 고민할 때면 나는 짐을 꾸리기 전의 여행자가 된 것 같다. 자, 어디로 떠나볼까. 여행에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은 여행지를 선택하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흥분한 마음을 안고 책의 여러 섹션들을 옮겨다닌다.
이 포스팅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있는 비문학에 대한 오해와 내가 발견한 비문학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큰 오해는 전부 다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감.
문학이 5월의 일요일 오후에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면 비문학은 어딘지 모르게 시험을 앞두고 빼곡한 서재를 배경삼아 교수님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글쓴이는 나보다 훨씬 똑똑해 보이고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들어 본 적 없는 과학이론이나 화석을 근거삼아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 나는 점점 위축이 되고 그 모든 정보들을 소화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한 시간이 채 흐르기 전에 나는 소화불량이 된 채 책을 덮어버리거나 눈꺼풀이 내려앉은 나를 발견한다. 아마 오랜만에 책을 펼쳐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법한 일이다. 나 역시 그랬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렇게 책을 읽으면 절대 책과 친해질 수 없다. 책은 사람과 비슷하다.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스스로도 관계맺는 법을 알아야 한다.
책 한 권 읽기를 서울 지도를 그리는 것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도곡동의 샛길까지 그리지 않아도 그 책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책은 소화해야 하는 두꺼운 고기가 아니라 즐길 거리가 가득한 여행이다!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을 나누고 큰 스팟들만 새겨 넣어도 (학자가 될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저자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비문학 읽기는 콜라주 드로잉이다.
책을 정리할 때 챕터별로 순차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마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 완벽하고싶은 집착이 우리를 책과 멀어지게 한다.
나는 비문학 읽기를 콜라주 드로잉이라 이름붙였다. 여러 재료들을 이리저리 붙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듯이 비문학 읽기는 글을 읽으면서 정보의 조각들을 모은 뒤 나만의 드로잉을 만들어야 완성된다.
백문이불여일견. 내가 <총,균,쇠>를 읽었던 과정을 보여주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비문학은 문학보다 품이 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책의 성격상 불가피하다. 문학이 독자의 잠든 감정세포를 하나하나 깨우는 역할을 한다면 비문학은 정보를 먹기 좋게 다듬어서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 단계들을 하나씩 따라가보자.
(1) 읽으면서 밑줄치기
글자 그대로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면 밑줄을 친다. 독서는 시험이 아니다. 수능을 준비하며 문단의 중심문장을 찾던 강박관념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손이 이끄는 곳에 밑줄을 친다.
(2) 메모하기
그리고 메모를 하는데 메모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 문단이나 챕터를 요약한 것.
역시 요약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경우 챕터나 문단을 단위로 1~3문장으로 간략하게 요약한다. (형식은 #_______________.) 여기서 문단은 모든 문단이 아니고 그 챕터의 핵심이 들어있거나 어떤 책들의 경우 소문단, 그러니까 제목 + 문단 1 2 3 / 제목 + 문단 1 2 3의 형태를 가진 것에서 소문단(=제목)을 뜻한다.
이건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건강상식처럼 누구나 다 아는 이야지만 거의 대부분이 하지 않는 습관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다. 내용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때그때 간단하게 요약을 해 두면 나중에 콜라주 드로잉을 그릴 때 그리고 그 다음 챕터를 이해하는 것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요약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 즉, 숲을 보기 쉬운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나무들만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이 방법으로 <호모데우스>를 읽었는데 길을 잃을 뻔 하다가 여러번 다시 고쳐 길을 찾았다.
꼭 요약을 하자. 모든 문단과 챕터를 다 요약하지 않아도 된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넘기고 크게 크게 요약한다.
두 번째는 나의 상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보면 와, 저 사람은 집중력이 정말 좋구나,하겠지만 그런 사람도 잡생각에 빠진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대화와 비슷해서 온전히 내용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거나 회상에 잠기는 것처럼 책도 읽다 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상념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들을 적어두면 나중에 그 책에 대한 나의 관점을 알 수 있다.
관점이란 한 점에 대한 다른 점의 위치다. 비문학은 다른 장르보다 베이컨이 말하는 동굴의 우상에 갇히기 쉽다. 미시건, 옥스포드, 하버드 대학을 나온 사람이 하는 말인데, 퓰리처 상을 받은 책인데 감히 내가 어찌 반박하리. 나 또한 그랬었고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좋아하면서도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신처럼 책을 숭배했다.
하지만 책은 진리가 아니다. 정말 진리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대 탈레스부터 수천 년동안 논쟁거리가 되어 왔고 그건 스티븐 호킹도 모른다. 진리라고 여겨졌던 철학과 종교를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이지만 과학도 진리가 아니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사실일 뿐 변칙에 의해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책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책에는 저자의 관점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관점이란 그 사람만의 견해다. 같은 근거를 가지고 전혀 다른 주장을 가진 책을 쓸 수 있다. 그것을 진리인 양 숭배해서는 곤란하다.
아무튼 상념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적어두면 나중에 그 책에 대한 나의 관점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즉 부정인지 긍정인지, 어떤 전혀 다른 축에서 그 책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상념은 생각을 촉발시킨 문장이나 문단 옆 빈 공간에 끄적끄적 적어둔다.
(1),(2)를 끝내면 내 품은 어느새 여러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드로잉을 그리러 가 보자.
비문학 책을 덮었을 때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이다. 무척 신선하다고 느낀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내용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순간.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다. 책을 넘기면 중간중간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으니까.
드로잉의 초벌그림 그리기
A4를 한 장 꺼낸다. 그리고 책을 처음부터 다시 쭉- 넘기면서 요약해둔 조각들을 펼쳐 적어본다. 즉 정보의 조각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 때 챕터별로 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챕터는 아래로 일방향적이기 때문에 좀 더 입체적으로 조각들을 나열해 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콜라주에서 주워 모은 조각들을 다 쓰지 않는 것처럼 모든 정보 조각들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밑줄을 긋거나 요약을 할 때는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덮었을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책 전체의 주제에서 보자면 사소한 내용일 수도 있다.
<총,균,쇠>의 경우 600페이지가 넘지만 구체적 증거자료가 많다보니 핵심 메세지만 파악한다면 뺄 수 있는 정보들이 많다. 그런 것들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이 때 상념을 쓴 조각들을 드로잉에 넣어도 좋다.
조각들을 하나씩 연결하다 보면 이제 서서히 책의 전체 메세지가 보일 것이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단지 조각들을 A4에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책의 전체 메세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쉬울 뿐만 아니라 책을 더 입체적이고 중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드로잉을 깔끔하게 정리하리
이제 A4를 한 장 더 꺼낸다. 마지막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앞 선 A4에서 나열한 조각들을 정리해서 깔끔하게 한 장으로 정리한다.
이제 비문학 읽기가 끝났다. 앞서서 말했지만 꽤 품이 들이 든 여정이었다. 이제 보상을 받을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으로만 읽을 때와 무엇이 다를까.
하나. 책을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찰력 있는 사람이란 대상을 10km 떨어진 지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숲을 보는 사람. 이제 우리는 숲을 볼 수 있다. 콜라주 드로잉이 그 숲이다. 책이 두꺼울수록 어려울수록 이 방법은 진가를 발휘한다. 나는 물론 코스모스도 이렇게 읽었다. 요약없이 그 엄청난 두께와 정보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지능은 다 비슷하다.
둘. 여러번 읽기가 가능하다.
비문학은 절대 한 번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소개팅처럼 여러번 만나야 하는 책이다. (어떻게 한 번 만나서..)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한 번만 만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만 한다. 내용이 쉽지 않다보니 여러번 읽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고 한 번 눈으로만 슥- 읽었기 때문이다.
이 때 내가 쓴 #들을 읽어보자. 우선 내가 내 말로 요약했으니 이해하기가 쉽고 #들만 따라가며 읽어도 다시 책 1권을 다 읽은 효과가 있다. 이건 엄청난 효과다. 나는 이렇게 사피엔스를 여러번 읽었고 그러다보니 푸조 사례나 인간의 언어를 설명하는 호랑이 예시는 자연스럽게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팁 하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에 [#그 문단의 주제. 그런데 거의 이해못함.] 이라고 써두면 나중에 그 부분을 차근차근 다시 읽어 보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셋. 나의 관점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관점이 탄생하기 전까지에는 수많은 상념들이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꺼진다. 거품이 일어났지만 모두 꺼져 버린다면 관점,이라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에게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상념들도 쓰지 않았던가. 책을 넘기면서 상념들의 궤도를 따라가다 보면 (상념은 요약과 다른 마크를 붙이는 것이 좋다) 내가 저자의 관점에 무의식적으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쌓이는 기쁨!
이렇게 한 장 한 장 쌓인 나의 비문학 드로잉이 몇 백 장 에버노트에 저장되어 있다. 어제 일도 기억이 안나는데 일 년 전 읽은 과학책이 기억이 날 리 없다. 그럴 때 들어가서 다시 보면 기록도 새록새록 나고 두툼한 돼지저금통을 안듯 마음이 풍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