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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르 Mar 02. 2018

9_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언어가 가진 식스센스

내가 소설을 읽지 않았던 다른 이유는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허구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한다. 훌륭한 작품일수록 그 표현방법은 세련되고 아름답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었고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예술이다. 예술은 얼어있던 감정을 녹일 수 있을 때 성공한다. 인간의 감정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얼어 있어서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쉽사리 녹지 않는다. 내 마음은 오랫동안 꽁꽁 얼어 있었다.


처음으로 소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는 데미안을 읽었을 때였던 것 같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얼굴을 보고 느낀 감정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소년의 얼굴을 가지지 않고 어른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보았다고, 혹은 감지했다고 믿었다. 그것이 남자의 얼굴만이 아니며 또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여자 얼굴도 조금 그 안에 들어 있는 듯했다. 특히 그 얼굴은 내게, 한순간, 남자답거나 어린아이답지 않고, 나이 들었거나, 어리지 않고, 왠지 수천 살은 되게, 왠지 시간을 초월한 듯, 우리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대의 인장이 찍힌 듯 보였다. 짐승들이 아니면 나무들, 아니면 별들이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비밀스러움이 묻어나는 데미안에게 싱클레어가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자와 여자도 아니고 어린아이와 어른도 아닌 그 모든 경계에 있는 얼굴. 헤세는 데미안을 세상의 기준을 초월한 존재, 만물의 근원이 육화된 존재로 그리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역시 시간의 세례를 받은 작품이라 그런가,하고 나는 감탄했다. 문학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학에는 언어만이 줄 수 있는 식스센스가 있다


인간의 감각은 다섯가지지만 식스센스가 있다면 나는 그것이 언어로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데미안 이후 많은 문학작품들을 읽었다. 물론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도 있었고 데미안만큼 아름다운 것도 있었다.


아름다운 작품들의 공통점은 그 작가만이 가진 표현이었는데 그 비유와 묘사가 적확하거나 아름다울 때 내 감정이 녹았다. 포스팅을 하면서 그 표현들을 거칠게 분류해봤다.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 아름다운 비유


다음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내 마음을 가장 움직인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이성이란 자로 만물을 재는 주인공과 다르게 조르바는 육체로 세상을 이해한다. 포도 열매가 태양 빛을 받아 무르익어서 포도주가 되고 그것이 사람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단순한 현상에도 놀랄만큼 그는 순수하다. 그는 태초의 인간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만물에 감탄한다.


이를 두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신비로운 묘사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이 사실을 잊는다. 흙을 언제 마지막으로 만져봤던가. 개구리 우는 소리, 푸른 여름밤, 길가에 핀 이름모를 꽃들.. 어렸을 때는 늘 자연과 함께였는데 이제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조르바는 자연을 기억한다. 어린아이들은 처음 보는 것이 많아서 늘 세상이 신기하다. 하얀 눈이 쌓이는 것도 신기하고 몸이 바닷물에 뜨는 것도 신기하고 파도가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것도 신기하다.


조르바는 어린아이를 닮았다. 그는 갓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자연을 바라보고 감탄한다. 고단했던 세월이 얼굴에 주름을 남겼지만 조르바의 탯줄은 여전히 대지와 맞닿아 있다.


둘. 적확한 비유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초벌 그림>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대목이다. 얼마전 테레사는 토마스를 만나러 보헤미아에서 프라하까지 왔는데 첫 날밤부터 몸이 펄펄 끓었다.


일주일 뒤 그녀는 회복했고 다시 보헤미아로 돌아갔다. 그녀가 떠난 뒤 토마스는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녀가 아픈 모습을 지켜볼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녀를 불러들이겠지만 확신이 없다. 그대로 그녀를 내버려두자니 시골 술집의 종업원으로 생을 마무리할 그녀의 미래가 마음에 걸린다.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토마스는 더욱 혼란스럽다.


이를 두고 쿤데라는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를 떠올린다. 수많은 관중을 앞에 둔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배우. 배우는 당황스럽다. 대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리허설을 거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내뱉는 것이 낯설게만 느껴지진다. 하지만 연극은 시작되었으니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입술이 옅게 떨린다.


하지만 여기에서 쿤데라는 그 표현마저 어쩌면 정확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재상영되지 않는 연극이라면 그것을 연극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일회성 퍼포먼스에 가깝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 삶도 연극보다는 즉흥 퍼포먼스에 가깝다.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단 한 차례만 일어난다. 쿤데라는 여기서 완성작 없는 초벌그림,이라는 비유를 쓴다. 선은 엉성하게 그려진 채 매듭지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끝나버린다.


셋. 공감각적인 표현


어둠이 거리를 푸르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서쪽 벽의 망루에 올라가서 문지기가 뿔피리를 불어 짐승들을 불러모으는 의식을 바라보았다. ....중략.... 그것은 어슴푸레한 푸른빛을 띤 투명한 물고기처럼 저물어라는 거리를 잔잔하게 빠져나가 포도에 깔려 있는 돌과 집집마다의 돌벽, 강둑길에 늘어선 돌담을 그 소리로 적셨다. 대기 중에 섞인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단층을 빠져나가듯 그 소리는 도시 구석구석까지 조용히 울려퍼졌다.


마지막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나 1Q84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이 장면은 풀피리 소리에 고개를 드는 짐승들을 주인공이 지켜보는 장면이다. 하루키의 문체라 가진 매력 중 하나는 몽환적인 분위기인데 여기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그렇다.


소리는 청각이지만 그는 청각을 시각과 촉각으로 치환시킨다. 피리의 신비로운 음색은 어슴푸레한 푸른빛을 띤 투명한 물고기가 되고 그것은 물고기가 강물을 헤엄쳐 나아가듯 거리를 향해 뻗어간다. 시각적인 묘사다.


돌담을 그 소리로 적셨다,는 표현도 아름답게 느껴졌는데 촉각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리가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빗물처럼 적신다고 표현하다니. 정말 하루키만이 구사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싶은 것처럼.


소설이 가진 아름다움은 언어에서 나온다. 그래서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묘사할 때면 늘 어렵다. 적도에 사는 사람에게 눈을 묘사하는 것처럼 읽고 느껴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으로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아주 기쁠 것 같다. 활자가 주는 식스센스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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