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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사 Oct 27. 2024

함께 읽기의 힘

도둑맞은 집중력 되찾기

디지털에 집중력을 도둑맞은 시대. 사람들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는 일을 벅차게 느낀다. 우리도 그렇다. 그래서 집중력을 도둑맞은 우리는 도저히 두꺼운 책을 혼자 읽을 자신이 없어서 모여서 함께 읽기로 했다.


혼자서는 읽기 힘든 책이지만 여럿이 함께라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가 되어주며 읽으면 혼자 읽는 것보다 잘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시작은 ‘책 읽기보다 사람이 좋아서 모임에 나오는, 그러나 한 번도 책 읽기와 독후감 쓰기에 소홀한 적은 없는’ Y의 번개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번개 제안 공지는 이랬다.


리드 위수미 번개
준비물: 사피엔스와 독서 의지
책이 총 605페이지입니다. 일상 속 우선순위에 밀려 아직 책을 많이 못 읽으신 분들, 토요일에 만나서 함께 읽어요!


그렇게 멤버들을 모았고, 이 공지에 따라 우리는 모였다. 그날 다시 한번 공지했다
“6시부터 9시에 책 읽기 번개 진행. 오다가다 혹시 지나가시는 분들 놀러 오세요.”


장소와 시간을 정해두니,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시간에 드나들며 참여할 수 있었다. 모여서 멤버들을 책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 장소가 정말 ‘아지트’ 같았다. 그날의 장면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나는 타임랩스로 모임의 모습을 찍었다. 책을 읽고 있는 여러 명의 모습은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장면으로 다가왔고, 이 순간을 오지 않은 멤버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서 나는 단톡방에 그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때의 우리는 각자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시선을 느꼈다. 책을 읽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계속해서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두꺼운 책을 2시간 만에 다 읽을 수는 없어서 우리는 책을 다 읽진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늘 시작이다. 읽기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의 모임을 마치고 나서도 평일에 줌으로 또 모이기로 했다. 독후감 마감일은 그다음 주 금요일 11시 59분이고 목요일에는 독후감 쓰기를 시작한다고 봤을 때, 화, 수요일 저녁에 줌으로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다.


공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리드 위수미 번개 영상 공유합니다. 같이 읽으니까 집중 잘되고 좋아서 돌아오는 화수 밤 10시부터 11시에 줌으로 만나서 리드윗미 하는 줌번개 진행해 볼게요 많은 참여 부탁합니다.”


당일에 한번 더 공지를 했다.
“5분 정도 간단한 인사 나눈 후에 바로 사피엔스 책 읽기”
“집중력 도둑맞으신 분들 모여요. 구경꾼도 감시자도 대환영 ”


책을 읽으러 모이는 자리에서는 다들 반가움에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주객이 전도된다. 나는 엄격한 관리자의 역할을 맡았다.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잘 따라와 주는 멤버들이 있어서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이다. 내가 자칫 딴 길로 빠지면 다른 멤버가 엄격한 관리자가 되어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덕분에 리드윗미 모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줌에서는 손동작에 맞춰 이모티콘이 나오는 기능이 있는데 멤버 중 누군가가 장난치듯 그 기능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순간이 작은 이벤트가 되었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하지만 다음 모임에서는 장난 금지 조항을 공지했다. 이 또한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너무 엄격하게 금지하진 않았다. 다 즐겁자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줌으로 만난 우리들의 사진을 찍었다. 오지 않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우리가 모여서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보여주고 더 참여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해봐서 좋았기 때문에 안 해본 멤버들에게도 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 이유였다. 그러다 너무 잘 읽혀서 목요일에도 진행했다. 시간이 안돼서 다들 못 온다고 해도 혼자라도 줌을 켜고 누군가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책을 읽을 심산으로 한 명만 와도 읽는다는 의지로 Y가 공지를 올렸다.

“고독한 독서방 운영됩니다. 아직 사피엔스 안 읽으신 분들 들어오시고 잡담금지 애교 금지”


그렇게 우리는 세 번의 줌 모임을 진행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참여해 준 멤버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루만 참석한 사람도 있었고, 두 번 온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매번 출석해 주었고, 어떤 이들은 궁금해서 들러보기도 했다. 모두의 소중한 참여 덕분에, 리드 윗미는 대성공이었다. 작은 일에도 다정하게 응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모임에 큰 행운이다.


우리는 집중력이 약해진 이 시대에, 따로 또 같이 함께 읽는 시간을 통해 다시 그 집중력을 되찾는 시도를 해보았다. 이 경험은 나에게 그리고 아마도 함께 한 모두에게 더 큰 유대감을 선사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읽는 시간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이어주는 힘이 되었고, 든든한 동료의식을 느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한다는 것, 그 안정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그 뒤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이 맞는 '동료 타령'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건 안 비밀. 그 후로도 그날을 생각하면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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