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
<월간 위대함>에서 함께 읽은 책들 중 평소 나의 독서 취향과 가장 다른 책을 한 권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일론 머스크>를 꼽을 것이다. 이 책은 <스티브 잡스>와 궤를 같이하는데, 사후에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정리했던 <스티브 잡스>와 달리, <일론 머스크>는 가장 한창때의 거대 기업 CEO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마케팅적 색채가 짙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언론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떠들어대고 있는 데다 본인 스스로도 트위터까지 인수해 가며 자기 할 말은 이미 넘치게 전달하고 있는 마당에, 책까지 읽어야 할까 싶었다. 안 그래도 도지코인에 거하게 물려 언짢은데, 명랑했던 파랑새까지 포획해 이름마저 음흉한 X로 탈바꿈시켜 버리다니… 그의 과감한 행보가 참 대단하다 싶다가도 괜히 미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당시의 발제자 B는 “일론 머스크는 진짜 대단한 사람인데, 말도 안 되는 기행을 하는 오타쿠쯤으로 저평가되는 게 안타깝다”며 <일론 머스크>를 함께 읽을 것을 제안했다. 그렇다. 우리 모임엔 일론 머스크의 찐 덕후가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일론 머스크>는 머스크에 대해 가졌던 다소 부정적이었던 이미지를 개선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저 웃긴 관종 형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전과 달리, ‘순수한 의도로 위험한 생각을 하고, 심지어 그걸 실현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란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는 점에서 악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일론 머스크의 어떠한 점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일론 머스크는 모두가 상상하지 못했던, 혹은 상상만으로 그쳤던 일을 꿈꾸고 그중 일부를 현실에 옮겨낸 인물이다. 사실 그의 최종 목표인 ‘다행성 종족으로의 이행'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뭐 앞으로 하는 일마다 다 망해버린대도 이미 이뤄낸 업적들만 가지고도 역대급 반열에 들 수 있을 정도이다. ‘우주 산업', ‘전기차', ‘암호 화폐' 등 한 사람이 인생을 마치고 운까지 따라줘야 겨우 하나 이룰까 말까 한 면면이 거대한 산업들이 한 사람으로 상징될 수 있다니… 물론 축복받은 환경 덕분이 크겠지만,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모두가 일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Achiever”로 표현되는 인간 군상의 표본이라 생각될 정도로 일론은 본인이 가진 모든 걸 프로젝트에 쏟아부어 끝내 성취를 거두는 인물이다. “Achiever”의 큰 뜻을 범(凡)“Doer”가 어찌 헤아리리오…
개인적으로 <일론 머스크>의 발제가 좋았던 부분은 책 너머의 주제들로 토론의 질문들이 구성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날 지각해서 헐레벌떡 들어온 내가 영문도 모른 채 받았던 첫 질문은 “기술 혁신에 대한 규제” 문제였다.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어쨌든 변화는 오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소위 ‘낙오자’들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등이 보편화되면서 노인 소외 문제가 생겼다고 이들을 규제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덮어놓고 규제하기보다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고 답했는데, 이 이후로도 책에서 소개하는 에피보드들 보다는 “기술 발전이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테슬라)”, “AI가 제기하는 위협(Open AI)”,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 문제(엑스)” 등 일론 머스크의 사업 영역만큼이나 광범위한 토론 주제들이 이어졌다.
앞선 <일론 머스크> 발제를 정조준한 “그레타 툰베리 VS 일론 머스크”라는, 어찌 보면 유치하고 얼핏 황당해 보이는 토론 주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애초에 한 명은 기업가이고 한 명은 사회 운동가인데, 이 대결이 성립은 가능한 건가 싶지만 ‘기후 문제’에선 가능하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은 운석 충돌, 핵전쟁 등 인간종의 생존을 불확실하게 하는 대내외의 위협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며, 그중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가 바로 ‘기후 위기’이다. 즉, 일론 머스크는 ‘기후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목표가 인간종의 생존이라면, 다행성종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가장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태양광 에너지와 배터리 기술에 있다”는 일론 머스크의 주장 역시 이와 같은 맥락 위에 위치한다.
얼핏 보면 한정된 자원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80억 인류의 조별과제에 쏟기보다는, 소수의 능력자 집단에 몰빵해 기술 발전으로 극복하는 게 더 현실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반면 툰베리는 <기후 책>에서 “민주주의는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최선의 도구”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UN연설 이전까진 다소 생소했던 이 소녀는, 15세였던 당시 매주 금요일마다 파업 성격으로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는데, 이 사실이 전 세계에서 화제가 매주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이끌어냈다. ‘Friday for Future’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이 운동은 그레타 툰베리의 UN 연설 이후엔 전 세계 185개 국가에서 약 6,000개의 집회에 760만 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런 유명세와 함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및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위터에서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니 19년도에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CNN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주춤해진 감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후 문제’의 아이콘이자 스피커로써 활약 중인 만큼, 툰베리는 민주적 가치와 질서를 설파하며 개인들의 작은 실천과 관심을 촉구한다.
예상대로 <일론 머스크>의 열렬한 팬은 “그레타 툰베리랑 일론 머스크 중 누가 더 위대한가?”라는 질문을 보자마자 광분했다. “일론이 일궈온 그동안의 성취와 업적, 그리고 현재 받고 있을 스트레스와 중압감의 무게가 어떻게 10대 꼬맹이와 비견될 수 있냐”는 것이 요지였다 어떻게 한 사람의 고통에 무게를 달아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냉정하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룬 것 만을 놓고 봤을 때, 툰베리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며 거대한 움직임을 만들어냈을 뿐, 아직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연설이나 행동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 또한 생각해 보면 그다지 특별하진 않다. 그에 비해 일론은 이미 여러 차례 불가능해 보인 도전을 성공시킨 인물인 데다, ‘뭐 이런 사람이 있지’ 싶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만약 머스크로 의견이 쏠리면 툰베리를 적극 지지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투표를 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며 비로소 나 스스로가 머스크가 더 위대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론 머스크>를 열렬히 사랑하는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툰베리 지지자들과 1:1 토론을 시작했다. 이 날의 MVP는 그렇게 탄생했다.
“왜 툰베리가 일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해?”라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답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맑은 눈의 광팬이 던지는 악의 없는 집요한 질문에 각자는 그럴듯한 논리로 방어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중 “툰베리 같은 사람이 있기에, 비로소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는 주장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 보면 툰베리가 뜨겁게 설파하는 미래는 다소 이상적이지만 모두를 위한 미래인 반면, 일론 머스크의 미래엔 아마 높은 확률로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모두의 이상적인 미래를 꿈꾼 과거의 툰베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일론 머스크가 있는 것이라면,. 요컨대 일론 머스크가 ‘소심이’적 문제 해결이라면, 툰베리는 ‘불안이’적 문제 해결이다. 물론 개인별로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일 뿐, 둘 다 중요한 감정친구들이란 사실을 우린 <인사이드아웃 1>을 통해 배웠다.
“툰베리 같은 아이를 일론 머스크로 키우는 것과, 일론 머스크 같은 아이를 툰베리로 키우는 것 중 무엇이 더 바람직할까 고민해 보니 후자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주장은 나로서는 절대 떠올릴 수 없었을 관점이었다. 아마 나만이 아니라 교육의 현장에서 매일 영재 아이들을 피부로 마주하는 현직 교사가 아니고서야 쉽게 고민해보지 않을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과연 툰베리로 크고 싶을까, 일론 머스크로 크고 싶을까?”를 고민하다 끝내 나는 일론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다. 툰베리의 인생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와 같이 모임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이따금씩 내 머리에선 저런 생각이 절대 못 나오겠다 싶은 주장들과 관점들을 마주하게 된다. 비단 그 의견에 설득이 되는 순간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나와 너무 다른 생각을 마주하기도 하며, 나는 간과했던 사소한 부분을 지펴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나와 비슷한 사고 구조를 가졌다 생각했던 사람이 특정 문제에서는 나와 전혀 다른 입장을 견지하기도 한다. 다른 자리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모임에선 나와 다른 의견을 만나는 일이 몹시 즐겁다. 이는 “의견 다름”이 “no 존중”을 의미하지 않으며, 때로는 “more 존중”이 되기도 한다는 상호 간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서 <인사이드아웃 1>을 언급한 김에 시즌2까지 언급해 보자면, <인사이드아웃 2>는 우리의 모든 경험들과 기억들이 좋든 싫든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거름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독창적인 경험 위에서 독창적으로 사유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툰베리와 일론 머스크의 위대함을 논하며 우리가 발견한 위대함은 현재의 서로를 그 자리에 있게 해 준 각자만의 경험들, 그 알록달록한 의견들에 있지 않았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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