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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by 정지영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라는 철학자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소리가 날까?" 이 질문은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해야만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버클리는 유심론이라는 생각을 펼쳤는데, 그 핵심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주장입니다. 즉,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느끼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나무?

이제 숲 속의 나무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나무가 쓰러지는 순간에 아무도 없다면, 소리가 날까요? 버클리의 철학에 따르면, 소리는 그걸 듣는 사람이 있을 때만 존재합니다. 누군가가 그 나무가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소리를 들어야 소리라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죠. 즉, 지각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무가 아무리 크게 쓰러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 셈입니다.


이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어요. "아니, 나무가 쓰러지면 당연히 소리가 나지 않나요?"라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버클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소리란 우리가 듣는 행위를 통해서만 존재한다고요. 마치 누군가가 TV를 보지 않으면, 그 안에서 프로그램이 아무리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어도 '우리에게는' 그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존재와 인식의 관계

이 생각을 일상에서 한 번 적용해 볼까요? 예를 들어, 방 안에 의자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가 그 의자를 보지 못하면, 그 의자가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버클리에 따르면, 우리가 그 의자를 지각하지 못하면, 의자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즉, 무언가가 실제로 존재하려면 그걸 인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럼 이제 큰 질문이 남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걸까?" 버클리는 그럴 리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이 항상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죠. 즉, 우리가 보지 못하는 나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신이 항상 지각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이 우주의 모든 것을 인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않아도 나무는 존재하고, 소리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겁니다.



남이 보지 않으면 잘못도 없는 걸까?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버클리의 철학을 윤리적 문제로 살짝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이 보지 않으면 내가 한 잘못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버클리의 철학에 따르면 지각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잘못은 누가 보고 있든 말든 여전히 존재합니다. 윤리적 책임은 외부의 시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죠.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이와 같은 철학적 주제를 흥미롭게 탐구합니다. 드라마는 매 회차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졌을 때 소리가 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이 질문은 버클리의 철학적 질문을 변형한 것으로,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탐구하는 주제를 던집니다. 드라마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사건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주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지각하고 반응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건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죠.


또한, 드라마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통해 각 인물들이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며, 그들의 윤리적 각성과 선택을 탐구합니다. 이는 버클리의 철학에서 지각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소리가 날까?"라는 버클리의 질문은 단순히 나무와 소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존재가 결정된다는 철학적 개념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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