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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파네스 : 구름

by 정지영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당시 사람들이 자연 현상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비판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번개가 치면 제우스의 분노, 폭풍이 일면 포세이돈의 심판으로 여겼고, 신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거나 제물을 바치며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크세노파네스는 이러한 신화적 사고방식이 오히려 사람들이 자연의 진짜 원리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미신적 두려움만 키운다고 지적했습니다.


신화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

크세노파네스는 여러 신들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감정을 가진다는 당시의 다신교적 관점을 비판했습니다. 특히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신의 모습을 인간처럼 묘사하고,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가졌다고 설명한 것에 반대했죠. 그는 말했습니다. "만약 말과 소가 신을 그린다면, 신도 말과 소의 모습일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감정으로 신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착각이라는 뜻이죠.


크세노파네스는 신을 인간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 큰 오류이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잘못된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이 기분에 따라 분노하고 질투하며, 인간처럼 욕망에 휩싸인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신을 인간처럼 상상하는 사고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고,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비합리적이고 두려움에 기반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크세노파네스는 신이 인간과 다른 초월적 존재임을 이해해야만, 사람들이 삶을 편견과 두려움 없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

크세노파네스는 자연 현상을 신의 의지로 설명하는 대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구름이 태양의 열에 의해 증발한 수증기가 모여 생긴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당시 바다를 지나는 선원들이 신의 현존이라 믿었던 ‘세인트 엘모의 불’ 현상도, 그는 구름 속 물방울의 마찰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가 비가 오고 번개가 칠 때 돛대 위에서 발생하는 청자색 불꽃을 세인트 엘모의 불이다. 당시 선원들이 이 불이 신이 함께 한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이처럼 크세노파네스는 번개, 구름, 비 같은 현상에 물리적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고, 이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각이었습니다. 자연을 신화가 아닌 물리적 원리로 이해하려 한 그의 접근은 후대 과학적 사고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구름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멀리서 볼 때 구름은 다양한 모양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저 수증기 덩어리일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쉽게 보는 모습과 실제는 다를 수 있으며,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와 지속적인 탐구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현대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크세노파네스를 과학적 사고의 선구자로 평가했습니다. 그의 저서 <추측과 반박>에서 포퍼는 크세노파네스가 보여준 비판적 합리주의를 높이 평가하며, 그의 겸손한 인식 태도가 현대 과학정신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신화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 현상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미신적 태도나 무비판적 믿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특정 행동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거나, 운세와 점성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하죠. 또한, '명품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거나 '소비가 곧 행복이다'라는 식의 신념에 쉽게 빠집니다. 이런 태도는 옛 그리스인들이 자연 현상을 신의 뜻으로 해석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우리도 눈앞의 현상과 일시적인 생각을 쉽게 신화적 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나 뉴스에서 접하는 정보가 언제나 사실일 거라는 생각으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의 뜻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며 의문을 갖지 않았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크세노파네스의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그는 진리에 다가가려면 항상 회의적 태도를 잃지 말고, 우리가 이해한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시대의 구름은 무엇일까요? 나만의 구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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