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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Nov 20. 2024

월든의 순간들


"나는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진정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장 핵심적인 진실들만을 마주하고, 그것이 내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나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19세기 미국 초월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만능주의와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한 철학적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증기기관의 발명과 공장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점점 더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며, 도시로의 대규모 이주와 함께 공동체의 붕괴와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화되었습니다. 증기기관과 공장이 삶의 풍경을 바꾸고, 도시화가 가속화되던 시기에 그는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1845년, 소로우는 과감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매사추세츠 주의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간 홀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자급자족 능력을 시험하고, 자연과 더 깊이 교감하며, 단순한 생활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은 사계절을 모두 경험하며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고, 자신의 철학적 실험을 충분히 검증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주의자의 도피가 아닌, 근대 문명이 직면한 본질적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응답이었습니다.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에머슨의 초월주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소로우가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자연 속으로의 물리적 이동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인위적이고 복잡한 사회적 구조와 압박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적 가치를 찾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을 통해 그는 자발적 고독과 단순함 속에서 스스로와의 대화를 깊게 이어가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관과 욕망의 구조에서 벗어나 삶의 핵심적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철학적 결단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선언은 끊임없는 정보와 소비의 유혹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소로우가 말한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live deliberately)은 단순히 자각하며 사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 선택이 진정 자신의 것인지,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기대에 따른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필요와 욕망을 구분하여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과잉된 욕망을 어떻게 절제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생태계의 일부로서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로우는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나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불안이나 두려움의 표현이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 됩니다. 소로우는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여겼으며,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했습니다. 그는 월든에서 '죽음이 찾아왔을 때, 후회 없이 살았다고 느끼고 싶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매일의 삶을 성찰하고 단순한 생활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죽음 앞에서 삶의 본질적 가치를 찾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소로우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을 촉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았는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나 자신을 잃지는 않았는가?  

    내가 추구한 것들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이었는가?  


 소로우가 추구한 단순한 삶은 결핍이나 박탈이 아닌, 본질에 대한 집중을 의미합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광고는 더 많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소셜 미디어는 타인의 성공과 비교하면서 더 나은 삶을 갈망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소비문화와 사회적 압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본질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풍요는 때로는 '덜어내기'를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고, 관계의 질을 향상시키며,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단순함이 주는 진정한 깊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삶의 변화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월든의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소로우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가장 단순한 것들 속에서 발견된다" - 이것이 소로우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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