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영 Dec 16. 2024

사랑으로 정복된 증오는 사랑으로 변한다


"사랑에 의해 완전히 정복된 증오는 사랑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증오가 앞서지 않았던 경우보다 한층 더 크다."(스피노자, <에티카> 중에서)


 17세기 합리주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깊이 탐구하며, 감정의 역동적 변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남겼습니다. 이 명제는 증오와 사랑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어떻게 서로 맞닿아 있으며, 증오가 사랑으로 승화될 때 어떤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증오를 마주합니다. 때로는 사소한 다툼에서, 때로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증오가 관계를 갉아먹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증오의 본질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며, 이를 사랑으로 승화하는 현명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증오의 본질과 극복   

 스피노자는 증오를 "외부 원인과 결부된 슬픔"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증오는 단순한 부정적 감정이 아닌, 우리에게 슬픔을 안겨준 대상에 대한 복잡한 정서적 반응입니다. 이 슬픔은 우리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며, 증오의 대상을 없애거나 파괴하고 싶은 욕구를 동반합니다.


 증오는 또한 거울처럼 서로를 비춥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증오는 증오로 되돌아올 때 더욱 깊어집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상대방도 똑같이 우리를 미워하면, 그 감정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증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미워하는 대상이 고통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쁨을 느끼고, 그 대상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스피노자가 제시한 증오 극복 방법

 증오는 사랑으로써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대상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품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사랑하는 행위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에게 사랑이란 '외부 원인과 결부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우리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면 증오의 대상이었던 사람을 떠올리면서 슬픔 대신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기쁨을 느끼는 것을 보며 함께 기쁨을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하고 기쁨을 느끼는 걸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기뻐합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면 기쁨을 공유할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렇듯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면 이중의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은 증오를 극복합니다.


증오 극복의 현대적 사례와 연구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보여준 감동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7년간의 옥살이와 인종 차별의 쓰라린 고통 속에서도, 만델라는 증오 대신 사랑을, 복수 대신 화해를, 분노 대신 이해를 선택했습니다. "증오는 독과 같아서 품은 이의 영혼을 좀먹는다"는 그의 말은, 증오를 극복하는 길이 곧 자신을 해방시키는 길임을 일깨웁니다.


 또한 최근 뇌과학 연구는 흥미로운 발견을 내놓았습니다. 사랑과 증오, 이 상반된 감정이 뇌의 같은 부위인 기저핵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감정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 비슷한 강도로 우리의 행동을 이끈다는 걸 보여줍니다. 다만 그 방향성은 정반대입니다. 사랑은 마치 따뜻한 봄볕처럼 관계를 꽃피우고 더 깊은 유대를 만들어냅니다. 반면 증오는 서리처럼 관계를 얼어붙게 하고, 때로는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이런 발견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랑과 증오가 같은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증오의 에너지를 사랑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거센 강물을 막아 전기를 만들듯, 부정적 감정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뇌과학의 발견은 수백 년 전 스피노자가 통찰한 '증오는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에 과학적 근거를 더해줍니다.


증오를 넘어 더 깊은 사랑으로

 스피노자의 철학, 만델라의 삶, 그리고 현대 뇌과학의 발견은 증오가 단순히 부정적 감정으로 끝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사랑으로 극복하고, 원인을 이해하며, 정신의 힘을 키울 때, 증오는 오히려 더 깊은 사랑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증오를 느낀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자문해보세요. "이 증오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이 감정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증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사랑으로 바꿀 때, 그 사랑은 증오를 거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한 유대를 만들어냅니다. 스피노자가 통찰했듯, 증오를 극복한 사랑은 인간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엽니다. 오늘, 그 작은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어보는 건 어떨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