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영 Oct 20. 2024

스토아 철학의 시작 : 키티온의 제논

 1. 삶의 전환 : 난파선에서 철학으로

 키프로스의 작은 도시 키티온에서 태어난 제논. 그의 젊은 시절은 무역업을 이어받아 바다를 누비며 상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일을 이어가던 그는, 그때만 해도 자신이 철학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어느 날, 제논은 항해 도중 거대한 폭풍에 휘말려 배가 난파되는 사고를 겪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아테네 해변에 떠밀려 온 그는 우연히 한 서점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발견했고, 그 책이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습니까?" 제논은 서점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은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하나였던 테베의 크라테스를 가리켰습니다. 제논은 곧바로 크라테스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고, 금욕적 삶과 덕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철학적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제논은 이후 여러 스승을 통해 배움을 이어갔고, 마침내 자신만의 철학을 세웠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스토아 포이킬레’라는 회랑에서 가르침을 펼쳤고, 이 회랑의 이름을 따서 그의 철학은 ‘스토아 철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 시대적 배경: 혼란 속에서 길을 찾다

 제논이 철학을 탐구하던 시대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가 몰락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으로 헬레니즘 제국이 형성되던 시기였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혼합되며 개인이 사회와 정치에서 활약하기 어려워졌죠. 마치 오늘날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진 것처럼,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연결이 느슨해지며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차 내면의 평정과 덕을 추구하게 되었고, 제논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철학적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제논은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연과 조화된 삶’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연을 단순히 존재론적으로 탐구한 선대 철학자들—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연구하며 만물의 존재와 변화를 설명하는 원리로 삼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만의 목적과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제논에게 자연은 단순한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기준이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곧 인간의 덕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3. 스토아 철학의 덕목: 자연과 함께 사는 법

 제논은 자연을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우주적 이성과 질서로 보았습니다. 그는 자연이 곧 신의 이성, 즉 로고스라고 믿었습니다. 인간이 이 로고스를 따를 때 비로소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덕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자연은 마치 교사와 같았습니다. 자연의 질서에 맞춰 살아가면 인간은 용기, 절제, 정의, 지혜와 같은 덕목을 실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제논은 보았습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네 가지입니다: 용기, 절제, 정의, 지혜. 제논은 이 네 가지 덕목이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덕목들은 단순히 개인의 성품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직면하는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침입니다.

용기는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힘입니다. 절제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사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정의는 사회적 조화를 이루기 위한 필수 덕목이며, 지혜는 자연의 이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따르는 능력을 뜻합니다.


 제논의 난파 경험은 이러한 덕목들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배가 난파되고 모든 것을 잃은 순간조차, 그는 그 상황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인생이 언제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고, 자연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그 속에서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4.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삶: 평온을 얻는 길

 제논이 강조한 자연과의 조화는 단지 철학적 사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제논은 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깊이 탐구했고, 그 해답은 덕을 실천하는 삶에 있었습니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산다는 것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는 고난과 역경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덕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논의 철학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삶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의 난파 경험처럼, 우리도 종종 삶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논은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조차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덕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현대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을 통제하려는 시도보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다스리고, 자연의 흐름에 어떻게 조화롭게 맞춰 나가는가입니다.


 또한,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덕목들은 단지 개인적인 성취나 성품의 완성을 넘어, 더 넓은 공동체 속에서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제논은 인간이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연대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정의를 실천하고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삶의 핵심입니다. 제논의 철학은 개인의 내적 평온과 사회적 조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매우 실천적인 철학입니다.


 따라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은 결코 추상적인 철학적 명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논이 실제로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던 삶의 방식이며, 우리가 일상 속에서 덕을 실천하고 평온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길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인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용기, 절제, 정의, 지혜를 발휘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복잡한 세계 속에서도, 제논이 말한 자연의 질서와 덕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은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얻고, 더 나아가 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 08화 인생 마라톤 완주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