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한국인에게 국이란 참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밥의 민족이기 때문에 따끈한 국물에 밥알들이 흐트러지며 퍼져나갈 때면 ‘저는 이제 준비가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순전히 먹는 입장에서의 관점인 부분이고 반대로 밥알들은 사실 ‘앗 뜨거워! 살려줘!’라고 소리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참 이기적인 동물이구나 싶기도.
이러나저러나 미국에는따끈한 수프 한 숟갈이 겨우내 바깥에서 쪼그라든 우리의 마음을 녹여준다면 한국인들에게는 우리가 시원하다고 칭하는 국물이란 존재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도 들어가라고 한 적 없는 나 혼자만의 늪에 빠져들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싫어져 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그런 늪. 그런 날은 허우적대기보단 눈을 감고 장화를 신은 누군가가 우연찮게도 그 늪을 지나가다 나를 마주쳐 의도치 않았지만 구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빠져나온 후엔 축축이 젖은 몸 때문인지 사그라들지 않는 여운에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하는 말로 작게 중얼거린다.
‘당신은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렸어요, 더 늦지 않게 나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요리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사람들에게 뒤엉켜 마음에 있는 말 없는 말 내뱉으며 오늘 하루가 그냥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인 그런 날 집에 돌아가는 길 왠지 서글퍼져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날 집에 가서는 아무랑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마음먹은 날 버스에서 내려 저녁 즈음의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 온다. 몇 시간을 끓였을지 맑은 물이었을 텐데 어느 순간 육수로 거듭난 그 깊고 진한 향이 코를 감싸 온다. 아, 그래 이걸 위해 그 먼길을 치이며 집으로 돌아왔지. 생각이 들 때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 진다. ‘다녀왔습니다.’
빈부격차? 라기보단 집밥 격차를 벌릴 수도 있는 발언 일진 모르겠으나 국물 대표 4대 천왕인 추어탕, 삼계탕, 감자탕, 곰국을 감사하게도 늘 집밥으로 먹던 터라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까진 이 음식들을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또 할머니 맛에 익숙해져 집 밖에서 사 먹는 날이면 자극적인 맛 때문인지 집에 갈 때쯤 속이 콕콕 찔려온다.
국 식는다며 빨리 나오라는 할머니의 성원에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잠시 김이 솔솔 올라오는 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긴 하루를 지나 마침내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 새삼스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