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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Jun 05. 2022

번외 - 할머니와 미싱, 대가족이 살아간다는 것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우리 집엔 햇수로만 80년이 넘어가는 장수 미싱이 있다. 소위 발 미싱이라고 하는데 근래에는 모두 손 미싱으로 바뀌어 보기 어렵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6/25 전쟁 때는 모두가 집에서 들고 나온 게 미싱이었다는데 미싱 얘기만 하면  어린 나이에 미싱과 함께 수레에 실려 피난 갔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전쟁은 무섭지만 수레에 실려오던 어린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약간 귀엽기도 하다.


할머니 방 안쪽에 위치한 귀한 '싱거'(할아버지) 미싱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 집 작은 수선실 명목을 유지했다. 종종 미싱 때문에 방문을 드나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때도, 할머니는 저 크고 무거운 걸 왜 버리지도 않고 지고 다닐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 방에서 '들들들들' 소리가 날 때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 할머니 방으로 뛰어가 빼꼼 들여다보면 내가 버린 옷 조각들, 예전 집에 달렸던 커튼 천, 굴러다니던 단추들이 할머니 손을 따라 서로 한 발자국씩 모여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새로운 작품이 완성된다. 

그 오래된 미싱은 가죽끈을 바꿔달기도 하고 삐걱거리는 관절 사이에 기름도 먹어가며 내가 기억도 없던 시절 덮었던 조각 이불, 점점 짧아진 나의 교복 치마, 코트에 떨어진 단추들, 여름엔 삼배 깔개, 겨울 내 따뜻하게 덮었던 솜이불을 만들어내며 굴러갔다. 아마 그 미싱은 우리 집 사람들 속사정을 꽤고 있을게 분명하다. 오랜 세월 살아온 선생님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싸우는 우리 가족을 보며 왜 저렇게 작은 것으로 일희일비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을지 모르겠다. 


어렸을 땐 할머니랑 돈과 관계되지 않는 (예를 들면 꽃반지 만들기, 놀이터에서 모래놀이 하기, 꽃에 물 주기 등) 순수한 것만 해서 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순수"라는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었다. 점차 커가면서 할머니 가 나에게 해주던 모든 것들은 엄마의 노동으로 인해서 나온 것이고(한편으론 그 돈을 다른 곳이 아니라 손주들에게 썼다는 것에 회귀성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쓰고 싶은 곳에 돈을 쓰는 "순수"성이 본인이 벌지 않은 돈을 소비함으로써 나온다는 것을 안 이후로 할머니를 보는 나의 시선은 변해갔고 할머니가 돈과 관련해서 옹졸한 마음을 보인다고 느껴질 때면 점점 내가 사랑하던 할머니와 한 걸음씩 멀어져 갔다. 


우리 할머니는 못하는 게 없다. 요리, 수선, 노인정 회장, 뜨개질.. 눈앞에 선생님을 놓고도 매일 본다는 핑계로 언젠간 배워야지 생각만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우연히 집에 할머니랑 나만 남게 됐는데 밤에 불 켜진 방에서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나 "이때다" 싶어 방에 들어갔다. 안경을 쓰고 이제는 보이지 않을 법한 구멍에 실을 넣고 할머니는 무언가를 또 만들고 있었다. 늘 할머니가 "너도 해볼래?"라고 물어보면 복잡해 보이는 발 미싱 앞에서 손사래를 쳤는데 그날은 왠지 오늘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다 연습해 보라며 할머니가 준 옷가지 한쪽 끝에 손과 발을 맞춰가며 굴려봤지만 처음이라 몇 번이나 실이 끊어졌다. 화가 났지만 원래 처음은 그런 거라며 계속해보라고 하는 할머니의 말에 힘입어 삼십 분 넘게 끙끙대다가 네모 하나를 그려냈고 마루로 나가 할머니한테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이제 우리 집에서 나 말고 미싱 쓸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라는 할머니에 말에 예전의 순수했던 할머니와 나로 돌아간 것 같아 뭉클해졌다.


고부지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늘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을 싫어도 안고 갈수밖에 없는 일이다. 각자의 상황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로 어떤 사람은 한없이 억울해지기도, 미안해지기도, 불쌍해지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이 모든 것들을 서로 이해하고 안아가면 행복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뚫린 구멍을 매우며 우리 가족 풍선에 바람이 빠지지 않게끔 꽉 붙들고 있었지만 억지로 구멍을 막아봤자 곪아가는 건 내 마음뿐이었다. 서로 햙킨 상처를 덧내고 덧난 상처는 평생을 가는 흉터를 남기기도 하고 어느새 사라져 버리기도 했는데 그 상처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거나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거나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함께하는 세월 속에서 가족이 많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들을 겪으며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웃으며 우리는 머지 않아 돌아갈 날 가져갈 지구에서의 추억을 쌓으며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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