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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Oct 08. 2022

7. 특집 요리 - 삼계탕, 감자탕, 곰국, 추어탕-1

할머니의 밥상, 그리고 나

한국인에게 국이란 참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밥의 민족이기 때문에 따끈한 국물에 밥알들이 흐트러지며 퍼져나갈 때면 ‘저는 이제 준비가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순전히 먹는 입장에서의 관점인 부분이고 반대로 밥알들은 사실 ‘앗 뜨거워! 살려줘!’라고 소리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참 이기적인 동물이구나 싶기도.

이러나저러나 미국에는따끈한 수프 한 숟갈이 겨우내 바깥에서 쪼그라든 우리의 마음을 녹여준다면 한국인들에게는 우리가 시원하다고 칭하는 국물이란 존재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도 들어가라고 한 적 없는 나 혼자만의 늪에 빠져들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싫어져 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그런 늪. 그런 날은 허우적대기보단 눈을 감고 장화를 신은 누군가가 우연찮게도 그 늪을 지나가다 나를 마주쳐 의도치 않았지만 구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빠져나온 후엔 축축이 젖은 몸 때문인지 사그라들지 않는 여운에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하는 말로 작게 중얼거린다.

‘당신은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렸어요, 더 늦지 않게 나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요리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사람들에게 뒤엉켜 마음에 있는 말 없는 말 내뱉으며 오늘 하루가 그냥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인 그런 날 집에 돌아가는 길 왠지 서글퍼져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날 집에 가서는 아무랑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마음먹은 날 버스에서 내려 저녁 즈음의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 온다. 몇 시간을 끓였을지 맑은 물이었을 텐데 어느 순간 육수로 거듭난 그 깊고 진한 향이 코를 감싸 온다. 아, 그래 이걸 위해 그 먼길을 치이며 집으로 돌아왔지. 생각이 들 때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 진다. ‘다녀왔습니다.’


빈부격차? 라기보단 집밥 격차를 벌릴 수도 있는 발언 일진 모르겠으나 국물 대표 4 천왕인 추어탕, 삼계탕, 감자탕, 곰국감사하게도  집밥으로 먹던 터라 20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까진  음식들을  주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맛에 익숙해져  밖에서  먹는 날이면 자극적인  때문인지 집에  때쯤 속이 콕콕 찔려온다.

국 식는다며 빨리 나오라는 할머니의 성원에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잠시 김이 솔솔 올라오는 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긴 하루를 지나 마침내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 새삼스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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