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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Nov 28. 2019

8화 엄마, 내가 갖고 싶던 거였어

[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

4월에 시작한 우리들의 캠핑은 11월을 끝으로 잠시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아직 한겨울의 캠핑은 엄두가 안 났던 탓이었다. 겨울이 되면 캠핑장의 사이트를 장기간 저렴하게 대여하는 ‘장박’ 시스템도 있었지만 아직 우리에겐 무리라고 생각되어 이번 겨울기간은 쉬어가기로 했다.

장박은 말 그대로 오랜 기간 동안 머문다는 뜻으로 비수기인 겨울 동안 사이트를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1개월에서 4개월까지 기간은 원하는 만큼 빌릴 수 있다. 마치 월세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텐트를 사이트에 고정으로 쳐둘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장박을 하게 되면 방문할 때마다 텐트를 치고 접는 수고가 없다. 장박 첫날과 마지막 날만 고생하면 겨울 캠핑장을 세컨드 하우스처럼 쓸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장박을 하게 되면 텐트를 장기간 동안 캠핑장에 쳐두기 때문에 텐트가 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장박을 하는 경우 화목난로 같은 고정형 난로를 설치하는데 우리는 그런 난방용품도 없을뿐더러 지금 갖고 있는 선셋으로는 설치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렇게 한겨울을 지새우는 동안 우리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예쁜 텐트를 갖고 싶다.



세상에 예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으리라.

캠핑을 다녀보니 자연스럽게 예쁜 텐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감성의 끝판왕이라는 면텐트가 갖고 싶어 졌다. 면텐트였던 그랜드호텔을 사고 싶었지만 결국 사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듯 이번에야말로  면텐트를 사고 싶었다.

찾아보니 몇 가지 후보가 있었다.

최근 캠핑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와 캠핑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노르디스크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레트로스, 미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커크햄 등이었다.

처음에는 현재의 텐트 형태와 비슷하면서 하얀 아이보릿빛이 예쁜 레트로스 피아노맨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름에는 많이 더울 것 같다는 판단에 접고 노르디스크 이든을 찾아봤다. 하지만 이든은 거실형 텐트가 아니라서 크기가 작았다. 사진으로 보아하니 바닥면적이 지금의 침실 크기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것도 어렵겠다며 다른 것을 알아보던 차에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로 같은 노르디스크사에서 나오는 우트가르드(utgard)였다.



이거다!!



지금 갖고 있는 텐트처럼 텐트 양쪽에 문이 있어 통풍도 좋고 면이였으며 심지어 예쁘기까지 했다. 텐트의 길이가 지금보다 좀 짧았지만 오히려 네모난 모양이었기에 공간 활용이 좋아 보였다. 보면 볼수록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여름에는 밖에 활동이 많으니 우트가르드에 타프만 갖추면 사계절 캠핑을 즐기기 충분해 보였다.

곧바로 알아보니 역시나 비쌌다. 기본 구매가가 높다 보니 중고가도 높았다. 하지만 새로 사는 것과 중고로 사는 것은 대략 4-50만 원 정도 차이가 있었다. 비용이 꽤 차이가 있었기에 우리는 기다려보고 괜찮은 중고 상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새 상품으로 샀다가 혹시라도 우리와 맞지 않아 팔게 된다면 가격이 훅 떨어지기 때문에 무리하게 돈을 쓰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좀처럼 판매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도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거나 지역이 너무 멀었다. 그러는 동안 해가 바뀌고 겨울이 지나 어느새 3월이 돌아왔다.



사촌동생이랑 캠핑 가고 져요(가고 싶어요).



아들은 겨울 내내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3월이 되자마자 캠핑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캠핑처럼 사촌동생과 함께 말이다.

아직 텐트가 구해지진 않았지만 캠핑은 가야 했기에 일단 캠핑장부터 알아봤다. 새해의 첫 시작을 새 텐트와 함께 하면 좋겠지만, 아직 손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새해의 첫 캠핑은 선셋과 함께해야 할 듯했다.

캠핑장을 늦게 알아본 탓에 괜찮은 캠핑장이 없었다. 일단 겨울 동안 장박을 받아둔 곳도 많았고 겨울철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기 때문에 갈만한 곳은 정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홍천에 위치한 비발디 캠핑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원하는 잔디 사이트가 일부 있으면서 규모도 크고 관리도 잘되는 곳인 것 같았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기에 일단 예약부터 했다. 1박으로 말이다. 3월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춥기도 하거니와 급히 잡은 터라 회사 연차를 내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아쉽지만 1박만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리고 캠핑 날을 앞둔 바로 며칠 전 어느 날.

거짓말처럼 우리가 원하던 우트가르드를 파는 캠퍼가 나타났다.

타이밍이 어쩌면 이렇게 절묘할 수가 있을까? 우리는 기회를 놓칠세라 곧바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텐트를 가져와야 하는데 퇴근 후 집에 들러 차를 가져가자니 너무 늦었고 퇴근하자마자 가자니 그 무거운 텐트를 짊어진 채 돌아와야만 했다. 고민하던 남편은 퇴근 후 곧바로 만나 텐트를 가져오기로 했다.



내가 오늘 가져와야 하는 텐트 무게가
대충 쌀 한 가마니 정도 되네.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면텐트가 무겁긴 무거운 모양이었다. 너무 무거워서 그걸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오라 했더니 퇴근길이라 밀린단다. 결국 남편은 쌀 한 가마니 무게쯤 되는 그 텐트를 들고 지하철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문에 며칠 동안 남편의 어깨와 팔 엔 텐트를 매느라 고생했던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세 번째 집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캠퍼들 사이에서 노르디스크사의 텐트를 부르는 아명이 있었다. 바로 그건 ‘곰표. 새하얀 밀가루가 흩날릴 것 같은 이 별칭의 이유는 노르디스크사의 공식 로고가 새하얀 북극곰이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도 곰표가 생기다니...



곰표를 갖고 나니 새삼 신기했다. 캠핑을 이제 겨우 일 년째 하고 있는 우리가 감성캠핑의 끝판왕이라는 노르디스크의 텐트를 갖다니 말이다.


한번 눈에 콕! 박히자 얼른 갖고 싶었고, 마침내 손에 들어오자 몹시 지어보고 싶었다. 마침내 그날이 되자마자 우린 짐을 싸들고 캠핑장으로 날아갔다.

도착하고 보니 캠핑장은 아직도 겨울 속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빈 텐트가 캠핑장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박 텐트들이었다.


우리 일행을 비롯하여 몇 팀이 있긴 했지만 캠핑장은 무척 고요했다. 날씨도 흐릿하고 오는 길엔 산에 7부 능선까지 내린 눈도 봤으니 아직 봄이 오려면 더 기다려야 할 듯했다.





캠지기님께 안내를 받고 우리는 잔디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햇빛이 그리울 시기였으니 여름에 인기 있을 나무 밑은 사절이었다. 잔디마당 가까이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사촌동생 가족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들과 함께 파쇄석을 가지고 놀이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남편은 하나둘 짐을 옮겨 우리들의 세 번째 집을 짓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지어보는 우트가르드.

우린 이미 두 번의 경험에서 새 텐트를 치기 전에는 반드시 설치 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동영상으로 텐트 치는 법을 알아뒀다. 덕분에 생각보다는 손쉽게 우리의 세 번째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텐트의 재질이 면이라고 해서 어렴풋이 아이보릿빛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지어보니 텐트는 연분홍빛이 감도는 아이보리색이었다. 이런 오묘한 색감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가까이서 보면 아이보릿빛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베이비 핑크 같기도 한 이런 느낌을.

세 번째 집을 짓고 난 뒤 바라보니 이상하게 기쁜 감정이 피어올랐다. 드디어 우리 집을 찾은 느낌이었다. 날이 흐려 빛살 하나 비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트가르드는 내가 생각했던 그 예쁨 그 자체였다. 혼자 감동에 젖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들이 그 앞을 지나가더니 텐트 안을 들여다봤다. 아들도 새 집 구경에 나선 모양이었다.



아들, 우리 새 텐트 어때?



질문을 던져봤다. 그랬더니 아들은 작은 입으로 말했다.



. 맘에 들어.
(내가) 사고 싶었던 거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캠핑을 시작한 나이는 4살. 이제 어느덧 해가 지나 5살 된 꼬마 아이가 얼마나 봤다고 텐트를 알겠느냐만은 놀랍게도 아들은 우리의 새 집(텐트)을 보자마자 자신이 갖고 싶었던 텐트라고 말했다. 마치 이 텐트를 사기 위해 퇴근 후 힘들게 사 왔던 아빠나, 텐트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엄마처럼 말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 순간을 망각으로 인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기록했다.

아들이 우리들의 새 집을 좋아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우트가르드는 기존의 텐트들과는 다르게 이너 캐빈을 쓰지 않았다. 이너 캐빈을 쓸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공간이 좁아져서 텐트를 치고 내부를 넓게 원룸처럼 쓰는 형식을 추천했다.

그러면 혹시 춥지는 않을까?라고 의문이 들긴 하지만 추운 가을, 겨울 시즌에는 난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따뜻하다. 그리고 실제로 사용해본 결과 환절기에도 난로 없이 전기매트만으로도 충분히 잘만했다.

내부를 원룸처럼 사용하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었다.

우선 좋은 점은 실내가 넓게 트여 있기 때문에 무척 쾌적했다. 게다가 중간에 나누는 이너 캐빈도 없기 때문에 난로를 공기를 데워서 순환하기에도 좋았다. 물론 공기를 순환하기 위해서는 서큘레이터 또는 선풍기가 필수다. 그래서 겨울에 왜 필요할까? 싶은 서큘레이터도 가져간다.

나쁜 점은 바로 문을 열면 밖이다 보니 겨울에 문을 열면 곧바로 찬바람이 침실로 들어온다. 이너 캐빈이 있을 경우에는 한번 차단할 수 있는데 이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너 캐빈이 있을 때에는 그 안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기가 좋았는데 원룸형이 되고 나니 사방이 창문이어서 다 닫아야지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말 세 번째 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안에 누워서 바라보는 빛과 그림자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 번째 집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무척 예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뷰는 텐트 안에 누워서 텐트 위로 비치는 햇빛과 나무 그림자다.

마치 핑크 아이보릿빛 캔버스에 자연이 그리는 그림 같은 느낌. 무척 감상적이고 몽환적인 포인트. 그 기분과 기억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무척 아름다운 잔상으로 남아있다. 언제고 꺼내어 감성을 떠먹을 수 있는 나만의 아이스크림.





뒤늦게 도착한 사촌동생네도 우리들의 새 집을 보자마자 좋아했다. 역시 가족이라서 취향도 닮았는지 그 캠핑 이후로 사촌동생네도 새 집을 들였다. 우리 집과 동일한 노르디스크에서 나오는 텐트이자 원뿔형의 버섯처럼 생긴 아스가르드로 말이다.

 집을 들이고 나니 새로운 가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신혼집을 꾸밀 때처럼.

분명 처음 캠핑을 시작할 때만 해도 캠핑 장비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내가 이제는 남편보다 더 예쁜 장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가 신혼살림을 사모으는 재미처럼 예쁘고 예쁘며 정말 예쁜 것들을 하나둘하나둘 모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집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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