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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07. 2022

누구나 첫 자전거는 있어야 한다

언젠가 작가 허지웅의 집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서재 한쪽 벽에 있던 책장에는 피규어가 가득했다. 그는 결벽에 가까운 깔끔한 성격인데도 매일 먼지 청소를 감내하고 그 많은 피규어를 소장하고 있다. '저 먼지를 어떻게 매일 청소하지? 피규어가 그렇게 좋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들렸다.     


"어릴 때 생활이 아주 어려웠어요. 생일에도 새 장난감을 선물 받지 못했어요. 성인이 된 지금 좋아하는 피규어를 하나하나 계속 모으고 있어요.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죠."     

방송을 본 지 좀 오래되어 정확히 저렇게 말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의미는 정확하다. 그가 덕후의 성향이 있어 좋아하는 영화의 피규어를 하나하나 모으고 소장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란 말을 오래오래 기억했다.     


좀 더 가벼운 이야기로 넘어가면 어른이 되어 월급을 타면서 꼬치구이를 10개, 20개씩 한 번에 사 먹거나, 80ml짜리 조그마한 요구르트를 머그에 가득 채워서 마시는 성인의 이야기는 아주 작은 결핍을 메우는 자그마한 움직임이라고 나는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무난한 삶을 살아온 나는 특별한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결핍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육아서적에는 성인의 성격이나 삶을 대해는 자세들이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들이 도화선이 된다고 적혀있었다. 초보 엄마인 나는 여러 육아서적을 열심히 읽었고 내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노력했다.     


내 노력의 결과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쌍둥이를 키우는데 다행스럽게도 친정 부모님이 지척에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성격이 무뚝뚝한 나는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살가운 딸이 아니다. 친정엄마에게 육아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이란 공통 화제가 생기고 나눌 이야기가 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이 소환되고 언제부터인지 친정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색칠공부를 시작하고 낙서를 하기 시작할 때 여러 색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48색부터 70색이 넘는 크레용을 준비해주었다. 큰 종이에 마음껏 표현하라고 스케치북에서 시작한 그리기는 전지 크기의 도화지를 넘어 거실 한 면을 내주었다. 벽은 나중에 다시 도배하면 되니까.     


이런 아이들을 보며 엄마는 "너희들은 좋겠다. 할머니는 미술시간마다 이상한 그림을 그렸는데."라고 혼잣말을 하셨다.     


이유는 어려운 생활 때문이었다. 외할머니가 열심히 생활을 꾸리셨지만 경제상황은 뻔했고 큰 딸이었던 엄마는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포기하며 자랐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부터 등록금을 내야 했는데 엄마는 항상 기한을 넘겨서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미술시간, 가정 시간 등 준비물이 필요한 수업시간에는 매번 난처했다. 이유를 모르는 선생님들은 수업 준비를 해오지 않는 학생으로 인식되고 매번 수업 준비물을 빌리는 엄마를 친구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때 수업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니 친구들이 사용하지 않는 색을 빌려서 칠해야 했고 그래서 그림의 색감은 이상했다.     


성인이 된 엄마는 '양장점'에서 일했던 디자이너였다.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여러 스타일의 옷을 직접 생각하고 그대로 만들 수 있었다.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엄마의 직업도 같이 사라졌지만 그 덕에 나는 어린 시절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맞춤옷을 입고 자랐다. 내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정말 예쁜 옷이 많았다. 색감도 훌륭했다. 나는 엄마의 미술시간의 일화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얼마든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쉬지도 외할머니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이 아팠다.     


이십 대 초반에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보았다. 한 에피소드에 어린 시절의 결핍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 세 명, 여자 세 명이 주인공인 시트콤인데 그중 '로스'의 아들이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각자의 첫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억에 잠긴다. 그때 '피비'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첫 자전거를 가져본 적이 없어. 앞집에 사는 아이에게 멋진 자전거가 있었어. 그 아이가 나에게 자전거가 들어있던 상자를 주었어. 내가 상자에 타면 새아빠가 상자를 끌어주셨어."라고.     

이 말을 들은 로스는 "그건 불공평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피비는 "아니야, 나도 새아빠를 끌어주었어."라고 대답한다.     


자전거를 갖지 못한 피비는 로스가 말한 '불공평'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나는 그녀가 불공평에 전혀 불평하지 않고 자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 엄마처럼.     


다시 '프렌즈' 이야기로 돌아가서, 며칠 후 로스는 피비가 이야기했던 것과 똑같은 자전거를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녀는 아주 기뻐하며 고마워했고 행복해했다.     

나도 로스가 되고 싶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의 결핍이 미술 시간 하나는 아니겠지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기로 했다. 전에 내가 컬러링북을 칠하던 걸 같이했던 엄마에게 엄마 자신의 것을 주고 싶었다. 나는 컬러링북과 여러 색의 마커펜을 구입했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이건 할머니 꺼야. 너희들은 쓰면 안 돼."     


무뚝뚝한 나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지는 못했다. "이거 칠해봐. 색 여러 색 있으니까." 이렇게 말한 게 다이다. 아이들에게는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시로 하는데 엄마에게는 그게 안 된다.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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