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획이 다 틀어지는 경험, 난임과 시험관의 세계
누가 봐도 나는 mbti로 봤을 때 파워 대문자 J이다.
예측가능한 것을 좋아하며,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 계획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은 다소 '즉흥적'인 상황이다. 특히 기존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를 제일 싫어한다.
하지만 난임과 시험관이라는 것은... 파워 J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힘든 상황들이 많다.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시험관 시작하다.
인공수정 2차가 모두 실패로 끝나고 8월의 마지막날 시험관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을이 들어갈 무렵이었다.
인공수정을 2차 결과를 기다리며, 질정을 넣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3일이나 빠르게 생리가 시작되었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병원을 방문하였다. 생리가 시작되던 날 침대에서 엉엉 울었다.
이제 진짜 시험관을 시작하는 것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리 3일 차에 병원을 방문하자 의사 선생님은 시험관으로 곧바로 들어가자고 말씀하셨고, 내 나이가 어리니 삼세번안에 된다고 말씀을 주셔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시험관 시작한 날로부터 이것저것 쉽지 않았다.
먼저 시험관 채취전, 항생제를 자기 전 공복에 먹으라고 하였는데, 이걸 먹자 새벽 3시까지 설사를 하며 엄청난 복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첫 시험관인지라 나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니, 의사 선생님은 과배란 약의 용량을 매우 높게 주셨다. 과배란주사를 오전 10시에 맞게 되면 11시부터 4시까지는 속이 메슥거려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비유하자면 세상 온냄새가 살아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냉장고, 화장실, 주방냄새등이 뒤엉켜서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입덧과 같은 증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기를 가지기도 전에 입덧 증상을 미리 겪게 되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당기지 않고 달달하고 톡 쏘는 것만 당겨서 체리콕을 먹었다.
중간중간 초음파를 확인하러 병원을 가는데.. 아무래도 나는 '난소기능 저하'인지라 많은 양의 과배란 호르몬을 사용해도 일반인만큼의 난포 개수가 나오지 않아 보인다고 하였다.
과배란의 시기를 보내고, 첫 난자 채취를 하게 되었다.
남편의 손을 붙잡고 병원에 가서 수면마취를 하고 채취를 진행한 후, 깨어났다.
채취 이후 나는 채취개수가 아주 많지 않아, 복수가 차는 부작용등은 없었지만 이후 항생제를 먹은이후, 엄청난 설사에 또 시달리게 되었다. 하루에 20번 정도 화장실을 왔다 갔다..
첫 채취에는 이렇게 채취 전과 후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며 큰 신고식을 크게 치르게 되었다.
2번의 시험관 실패, 그리고
그리고 한 달 쉬고, 배아를 얼린 동결배아를 이식하는 동결이식을 진행하였다.
슬프게도, 1차 시험관 실패. 착상 수치 0.1로 비임신이라는 결과를 듣게 된다.
1차 시험관 결과가 있던 날, 남편이랑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난다.
당시 남편은 연차를 내고 나와 함께 피검사를 하고, 잠실호수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의 비임신 결과를 전화기로 들은 후, 남편은 나에게 잠실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조바심 갖지 말고, 우리 저 호수의 물처럼 잔잔하게 있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평온하게 있자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퍼할 필요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
1차가 끝난 후, 시험관 2차를 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또 주사와 약과의 싸움.. 아쉽지만 시험관 2차도 착상 수치 0.1로 비임신으로 종결되었다.
왜 안 되는 것일까?
삼세번안에 된다고 했었는데... 두 번째까지 되지 않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 번이 넘어가는 건가? 그 경우는 생각 안 해봤는데...? 회사는..? 회사 휴직이 끝나면 어떡하지?
회사 난임휴직은 1년만 가능한 상태인지라 1년째가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두 번이 안되니까.. 세 번이라고 되리란 보장도 없고.. 그러면? 휴직이 끝나면? 어쩌지?
도대체 내 맘대로 계획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네
계획대로 되지 않자 극심한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두통도 있었고 감정도 더욱 우울해졌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시험관 3차 전, 자궁내시경이라는 수술을 해보자고 제시하셨다.
보통 자궁내막염이나 폴립을 제거하기 위해 시행되는 수술이나, 혈액순환을 극대화시켜 착상을 도와준다고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자궁경을 하게 되니 예상과 다르게 아까운 한 달을 이식하지 못한채 보내게 되었다.
난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 인생의 유연함
작년 시험관을 시작할 때, 상황은 지금과 나아진 것이 없는데 인생이 하루하루 괴로웠다. 그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고민의 순간들이 매 순간 찾아왔었다. 불안함도 커져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어찌 보면, 시험관 4차를 넘어 5차를 향해 가는 고차수이기에 더욱 안 좋은 상황이라면 안 좋은 상황(?) 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마음은 좀 더 편안하다.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거센 파도가 일어난다면 파도에 몸을 맡기자
난임과 시험관의 시간 속에서 내가 배운 교훈이다. 인생은 절대로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내가 매 순간 아등바등 머리를 싸매고 아파하는 것이 아닌, 때로는 흘러가는 건 흘러가도록 두는 게 맞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유연한 생각을 하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두통이 사라졌다.
인생의 유연함을 배운 것이다! 난임이 내게 가르쳐준 최고의 인생의 교훈, 바로 유연함이다.
이제 나는 시험관의 회차가 늘어 갈수록
임신을 향해 가는 길로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계획이 좀 틀어지면 어때
시험관 초기, 나는 남들과 달리 내 인생을 예쁘게(?) 계획하지 못하는 것에 원통하고 분노했다. 인생의 플랜을 절대 짤 수가 없는 난임과 시험관 생활. 계획이 틀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속이 더쓰리고 암담하였다. 그러나 인생의 유연함을 깨닫고 느낀 순간, 마인드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계획이 좀 틀어지면 어때, 어차피 난 엄마가 될 건데
맞다. 난 어차피 엄마가 될 거고 이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난 엄마가 될 것이 확실한데 그사이의 시간들 속 계획이 조금 틀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이 시간들이 계획이 틀어지는 시간들이 아닌 엄마가 되길 기다리는 소중한 순간들이 되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다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게 선물 같은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고, 여행의 큰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내 난임인생도 이런 여행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을 때도 많지만, 어느 순간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파워 J인 나는 이러한 예측 안 되는 나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