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신의 계절 May 31. 2024

매일 외딴섬에서 표류 중 ft. 주사기와 기다림

나만의 섬안에 기다림의 지옥에 갇히다. 


난임병원을 다니다 보면 머릿속에 크게 다음과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무인도에서 혼자 앉아있는 내 모습 
물론, 한 손에는 주사기가 있고  


출처: 핀터레스트 




인생에 이리 많은 주사를 맞아본 적이 있을까 



나는 난임병원을 다니며 크게 두 가지의 힘듦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신체적인 힘듦과 두 번째는 정신적인 힘듦이다.  


보통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하게 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배주사'인데 이게 신체적인 힘듦에 해당한다. '배주사'가 가장 기본적으로 난임시술을 할 때 쓰이는 처방이다. 


어릴 적 기관지가 약하여 병원을 참 자주 다녔고.. 주사도 꽤 많이 맞았다. 

그래서 처음에 배주사를 처방받을 땐 '뭐 할 수 있지..' 생각하다가도 엉덩이가 아닌 배에 주사를 맞는다고 했을 때..! 직접 주사기를 내 눈으로 보며 배에 주사를 쑥 넣는 과정이 가능할까 싶었다. 


어떻게 배에 맞지.. 절대 혼자는 못하겠다.. 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도 거뜬하게 주사를 잘 맞아나갔다. 물론 맞을 때마다 아픔은 있지만... 

예상가능한 아픔이기에 견딜만하다. 


이젠,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웃으면서 하루에 100개도 맞을 수 있는 것이 주사이다. 


더불어 다양한 검사, 수술, 시술 등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 또한 나는 그냥 그럭저럭 적응해 나갔다. 

왜냐하면 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것이고, 아픔은 내가 감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 힘든 힘듦은 정신적인 힘듦인 것 같다. 

바로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난임을 겪는 모든 순간 적용된다. 

치열한 배주사의 흔적. 오늘도 고생했다 :) 




기약 없는 기다림은 언제나 힘들다 



난임생활의 시작과 끝은 모두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큰 나무줄기에서 나오는 작은 가지들처럼 큰 총체적인 기다림과 곁가지처럼 새어 나오는 작은 기다림이 있다. 

출처: 핀터레스트


가장 큰 기다림은 '이 어두운 터널과 같은 난임 시기'가 지나가고 '아가천사'가 오기를 바라는 기다림이다. 

이 큰 기다림 아래 매달매달 찾아오는 수많은 작은 기다림 등이 있다.

여자의 생리와 배란은 약 한 달에 한번 이뤄진다. 즉 나에게 임신의 기회는 1년의 12번이다. 

그마저도 호르몬 수치나 다양한 수술등이 겹치면 진행이 안되어 12번이 안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기다리고 기다려서 시술을 받게 되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각각의 기다림은 모두 힘들다. 

왜냐하면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배아 이식 후, 착상 결과를 기다리는 2주의 기다림이 제일 힘들다

이때는 하루하루가 정말 안 가고 오만생각이 다 든다. 

주변에서 이때의 시기가 왔다면, 나는 정신을 쏙 빼놓을 재미난 것을 찾아보라고 강력하게 권할 것이다. 



나의 행동 하나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어쩌다 해버린 행동들 하나하나로 인해 착상이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으로 연결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번회차는 아닙니다. 다음을 기약하세요'  

'축하합니다. 이번 회차에는 되었어요' 이렇게 미리 누가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약 2주 동안 오직 착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하나로 기다리는 시기이니 



이번에는 될까? 안되면 어떡하지 



등등을 생각하며 정신병이 걸릴 거 같기도 하였다.


대학입시, 취업준비, 결혼준비 등등은 내가 쏟은 노력에 의해 결과가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착상은 신의 영역이기에,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시험관 기간 내내 '내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정말 없구나'라는 무력감을 제일 느끼는 순간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외딴섬에 갇혀버리다. 



난임병원에서 '난소기능저하'라는 사실과 임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먼저 인공수정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의사는 인공수정도 2차까지만 권하였다. 

안타깝지만 인공수정 2차 모두 되지 않았다. 시험관을 시작했고, 몇 번의 실패를 지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처음 과배란 주사도 맞고 다양한 약을 먹게 되니, 호르몬 불균형으로 속도 메스껍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아침에 운동과 산책, 그리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빼고는 크게 외출을 하지 않았다. 


더불어 가족들 빼고는 다른 이들과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외에도 난임병원을 가서 시술을 한다는 사실등이 내겐 큰 우울감으로 다가왔고,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나를 더 고립되고 외롭게 만드는 일이었다.

차라리 공감받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좀 우울감이 덜했을 수도 있다. 

주변에 아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나는 나만의 섬안으로 스스로 몸을 숨겼다.


출처: 핀터레스트




나만의 작은 섬을 만든 이유 



아무래도 여자 30대의 초반의 나이는 일반적으로 1. 결혼하지 않았거나 2. 결혼을 해도 신혼이 대다수이다. 내 친구들이 그랬다. 


따라서, '임신'이라는 키워드가 불안,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은 시기이며 일반적인 30대의 여성들은 예상치 못하게, 또는 계획적으로 차근차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기다. (나는 할 수 없어 정말 부러운 일이다)


30대 초반의 여성의 일반적인 상황이 이렇기에 내가 '난임'과 '시험관'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는 적어진다. 일단 '임신'의 키워드가 불안,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간절함'으로 다가오지도 않은 나이다. 


 그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굳이 지금 그렇게까지 난임시술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조차 들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내 근황을 말하다 보면 내 상황을 말하게 되니,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과의 모임을 나가기가 어렵고 조용히 지내게 되었다. 

(내가 내향적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겪어보면 외향적인 성격들도 사람 만나기가 싫어질 것이다) 





외딴섬에 홀로 있는 것과 같은 외로움이 있다. 



아무도 내 상황에 공감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난임시술을 하는 내내 항상 외딴섬에 혼자 있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미안하게도 남편에게 나는 이감정을 자주 토로하였고 나 혼자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도 안다. 

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는 소수의 가족뿐이며 그 사람들은 나를 매우 사랑하며 가슴깊이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어루만져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도 나의 마음을 100%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도 내가 아니면 나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마음은 나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난임기간을 보내면서 매번 생각한다. 나 또한 절대로 남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알고 있다. 100% 이해할 수 없어도 진심이 담긴 응원과 위로의 마음이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 자체로 응원과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지독하게 외롭지만 나는 매일매일을 희망으로 쌓아나간다.  

외딴섬에서 홀로 서있던 내가 주사기를 버리고 섬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린다. 

조만간 긴 기다림을 끝내고, 섬밖 시원한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날이 온다고 믿으며, 단단하게 하루를 맞이해 본다. 


출처: 핀터레스트 





이전 03화 시험관? 아직 어리잖아요_말 못 할 속사정(아내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