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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계절 May 24. 2024

난임,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엄마는 허니문 베이비, 그 허니문 베이비는 난임과 시험관중 

난임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왜냐하면 통계적으로 납득되지 않은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출생아 10명 중에 1명 정도 난임시술로 태어난다고 한다.

10%란 숫자는 매우 적다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자신이 90% 안에 들겠지라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내가 그 10%가 되어버렸다. 

시험관 1차 횟수당 성공확률이 30~40%라고 하여 3번 중 한 번은 되겠지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초반 3번 모두 실패하였다 (현재 6차 준비 중이다) 


이러한 확률과 통계들을 바라보면서 사람일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구나 생각하였다. 

특히 난임기간은 더더욱 그러하다. 

내 맘대로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하나도 없는듯한 느낌이다. 


난임을 인정하고 난임병원을 가기까지의 여정에서의 시작은 20대 후반 결혼으로부터 시작된다. 




만 28살 결혼, 신혼생활 

출처: 핀터레스트 



나는 남들보다 빠른 나이인 만 28살에 결혼을 하였다. 엄마 세대에는 20대의 결혼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우리 세대에는 20대의 결혼은 다소 빠른 선택이었다. 


당시, 친정엄마는 왜 이렇게 빨리 시집을 가냐며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철딱서니 없이 결혼준비로 신이 나 있었다. 막연하게 독립을 하여 신난 것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친정엄마와 지금은 코로나전에 해서 참 다행이지~라며 지난 시간을 편안하게 말하고 있다. 

더불어 더 지나고 보니,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난임병원에 좀 더 빨리 갈 수 있었기에 결혼을 빨리 한 것이 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마음으로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당장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배부른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양가의 도움 없이 우리의 힘으로 이룬 결혼인지라 나와 남편은 경제적 준비가 조금 된 뒤에 아이를 맞이하고 싶었다. 

(이거 또한 배부른 생각이었다. 내 맘대로 아이준비의 시기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생각이었다..!) 


또한,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임신에 대한 자신감(?)까지 있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보통 임신은 엄마 따라간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아빠 엄마의 '허니문 베이비' 였기에 '흐음 난 금방 생기겠구나' 하는 막연한 자신감을 혼자 느꼈다.

더불어, 남들에게 뒤지지 않은 튼튼한 하체(?)가 있었기에 임신을 하기에 최적화된 몸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신혼을 보냈다. 

혹시 우리 엄마를 닮아 아이가 너무 급하게 생기면 어쩌지란 걱정도 하였다. (푸하하) 


역시나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엄마는 허니문베이비로 날 가졌고, 그 허니문베이비인 나는 아기를 기다리며 시험관 중이다. 




이후의 시간들 


출처: 핀터레스트 


결혼식 이후, 2년간 코로나 기간을 보내면서 일찍 결혼하기도 하였고, 경제적 자립등의 고민으로 인해 임신을 크게 노력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임을 굳이 피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본격적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일반 산부인과에서 배란초음파와 배테기를 달고 살며 임신에 집중하였다. 

결과적으로 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산부인과조차 조심스레 난임병원 방문을 권유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원망이 들기도 한다. 진작 말해주지... 어찌 보면 내가 안일했을 수도 있다)


2023년, 내 나이 만 32살에 난임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동시에 그에 맞추어 난임휴직을 들어가게 되었다. 

난임휴직에 들어가면 '회사 스트레스가 0으로 수렴하기에 임신이 바로 될 것이다'라는 

주변 위로와는 달리 아기천사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인공수정 2차, 시험관 4차를 실패하고 2024년 새로운 병원으로 전원후 또 한번의 실패후, 시험관 6차를 준비 중이다. 


엄마 닮아 임신을 너무 급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정반대로 나는 30대 초 어린 나이에 난임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요새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너무 무언가를 빠르게 판단하지도, 결론짓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난임기간을 보내며 배운 가장 큰 인생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과 긍정 모든 일에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으니 내가 난임이고 시험관을 하지만 

또 바로 한 치 앞에는 곧 시험관의 터널이 끝나고 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엄마를 닮지 않았다면 난 시험관을 해서 아이를 맞이할 것이고 

엄마의 심한 입덧도 닮지 않아 평안한 임신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생각의 전환을 매 순간 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하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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