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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계절 Nov 08. 2024

너에 대해 알수록 마음이 아렸다.  

유산 후, 염색체 검사로 성별을 알게 되다. 

소파수술을 하고 2주 만에 난임병원을 다시 찾았다. 

수술이 잘되었는지, 경과를 확인하고 유산된 배아의 염색체 검사 결과도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2주 만에 병원 방문 



"잘 지냈나요? 마음은 어때요?"

진료실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내 마음에 대해 물어주셨다. 

난임병원은 환자도 많고 바쁘다 보니, 빠르게 1-2분 컷으로 진료를 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찬찬히 '마음'에 대해 물어봐주시니 그 '관심'이 나에겐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초음파 결과를 살펴보니, 수술은 잘되었고, 몸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라 하셨다. 2-3개월 정도의 휴식시간이 필요하다고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염색체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어디 보자.. 아, XY염색체여서.. 아들이었네요. 배아 염색체 자체는 문제없는 걸로 나오네요"


아들이었구나 

'아들'이란 말에 갑자기 차분하던 마음이 다시 울컥하며 요동쳤다. '었구나'의 과거형이 마음에 콕 박혀 들어왔다. 하지만 물어볼 이야기가 있었기에 다시 대화에 집중하였다. 


"아 선생님, 그.. 염색체 자체가 문제가 없나요? 그럼 배아가 문제가 없단 말씀이에요? 그럼 왜.. 유산된 거예요?" 


'유산'이란 단어를 언급할 때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 


"음.. 보통 이런 경우엔 원인이 없어요. 유산의 많은 이유는 대체적으로 원인불명이에요


선생님께서는 일단 배아 자체의 염색체 문제가 없으니, 남은 배아를 이식하는 방향으로 진행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몇 주 뒤에 다시 경과를 보기로 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출처: 핀터레스트 





아들이었구나,



진료실을 나오고 병원을 나서면서,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별을 알게 되니 아기가 막연한 '세포'에서 구체적인 '사람'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우리 튼튼이는 아들이었구나, 귀여운 남자아이 었구나' 

이 생각만 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불어 배아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고 유산은 원인불명이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튼튼이는 건강한 아이 었나? 내가 문제였나? 등의 생각으로 깊은 슬픔이 다시 나를 덮쳐왔다. 


버스에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 들렀다. 집 근처에 있어서 매일매일 산책을 할 때 들러서 기도를 하는 공간이었다. 오늘은 꼭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성당에 들어서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우리 튼튼이는 아들이었습니다. 아가가 하늘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기도를 드리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고 나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숨을 꾹꾹 참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슬픔의 파도가 다시 나를 집어삼켰다. 


임신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남자아이일지, 여자아이일지 궁금했는데. 

그토록 궁금하던 성별을 지금은 알게 되니 슬픔이 더 구체화되는 느낌이라 괴로웠다. 


출처: 핀터레스트 

너에 대해 알수록 마음이 아렸다.  



두 달 동안 아기가 나에게 머물던 시절, 다른 여느 산모들처럼 나는 아기에 대해서 너무 궁금했다. 아기의 반짝이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기차소리'일까 '말발굽소리'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남편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심장소리가 '기차소리'면 아들, '말발굽 소리'면 딸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너는 어떤 아기 일까, 일단 건강하겠지! 이렇게 심장이 빠르고 반짝이게 뛰는데, 엄청 활발한가 보다 이 아이는! 


그랬던 나인데, 역설적이게도 지금 나는 너에 대해 알아갈수록 마음이 아려왔다.

성별을 알아버리게 되었고, 그 성별이 과거형이 되었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 

염색체에 이상은 없었고, 유산의 원인은 모르겠다는 '원인불명'이란걸 알게 되자  이 네 글자가 너무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기에 대한 두 가지 정보를 얻게 되자 나의 슬픈 상상력은 끝없이 펼쳐졌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 마주치는 귀여운 남자아이들에게 모두 시선이 꽂혔다. 그 아이를 통해 내 아가를 잠시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 아이가 귀여운 행동을 하면 나도 모르게 웃었고, 동시에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져 왔다. 


슬프고 아프지만, 어찌 보면 내가 감내하고 견뎌내야 하는 감정임을 느꼈다. 


출처: 핀터레스트 




너에 대해 알게 되어 한편으론, 감사해 



여전히 마음은 슬프지만, 시간의 힘을 믿기로 하였다. 

그리고 아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내가 아는 것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해하기로 하였다.

슬픈 상상속에서, 나는 내가 그릴수 있는 가장 귀엽고 밝은 남자아가를 떠올리며 가슴에 묻는다. 





너에 대해 알수록 마음이 아려오지만, 너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어서 한편으론 감사해. 


이젠 엄마가 우리 튼튼이 좀 더 잘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아. 


너에 대해 좀 더 궁금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우리 튼튼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이 정도일 것 같네 


너에 대해서 아는 만큼 좀 더 마음가까이 너를 두고 애도할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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