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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계절 Nov 01. 2024

당신과 나의 '애도'의 시간

유산을 겪으신 분들께, '당신만의 애도'를 존중하고 공감합니다

결혼기념일 5주년을 하루 앞두고 두 달간 품은 아이를 유산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험관 6차 만에 처음으로 얻은 귀한 아기였다. 그로부터 삼일 후, 소파수술을 하였고, 하루하루 날들이 지나갔다. 


매일매일,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만의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나의 '아가'를 만났고, 

가을의 한가운데, 나의 '아가'를 애도한다. 




'부정'과 '분노'가 몰아치던 날들



수술을 하고 몸을 회복하는 현재의 시간 동안, 다양한 감정들이 일상 속에 휘몰아쳤다. 

유산 통보를 받은 이후로 꽤 오랫동안, 그리고 아직까지도 종종 내가 유산을 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임신을 했었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할 만큼 현재의 상황을 지극히 믿지 못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스의 이별 애도 5단계]에 따르면, 삶의 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겪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이 '부정'이었다. 난 철저히 내 상황을 부정하고 있었다. 내 상황을 부정하다 보니, 곧 괜찮아질 거야!라는 거짓된 희망을 섣불리 들추어내어 이 상황을 벗어나려 하였다. 

출처: 핀터레스트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다 보니, 슬픔에 잠기게 되었고 동시에 '억울함'과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이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한 촉발제 중 하나는 친구들의 임신소식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유산한 이 시점에 다른 친구의 임신소식을 단톡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험관 생활을 오래 하고 있던 터라, 임신소식도 나중에 알려야지 라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당연히 나의 '유산소식' 또한 알턱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은 당연히 나의 상황을 모른다. 그러니 친구의 새롭고 행복한 소식에 축하가 쏟아지며 단톡방이 떠들썩하였다. 나 또한 담담하지만 진심으로 '축하한다'라는 말을 꾹꾹 눌러 적어 보냈다. 


이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행복한 일을 겪을 뿐. 


그러나, 그 친구와 나의 상황을 비교하자니 그저 씁쓸할 기분이었다. 이 친구는 나보다 결혼도 훨씬 늦게 하였고 임신준비기간도 나에 비해 짧다.. 


이것이 바로 나의 마음속 '억울함'이 건드려졌다. '도대체 나만 왜 안되지?'라는 근원적 물음의 시작이었다. 


다른 sns을 통해서도 별로 소식이 뜸했던 또 다른 친구의 행복한 '임밍아웃' 피드를 보게 되었다. 2명의 임신소식을 보자마자 단숨에 단톡방을 꺼버리고 sns을 지워버렸다. 당연히 친구들의 임신소식은 축복할 일이지만, 현재의 내상황에선 마음의 축복이 나올 '여유'가 없었다. 


분노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 내 마음속에서의 근본적인 물음은 이거 하나였다. 


얼마나 내가 더 힘들어져야, 얼마나 내가 더 큰 고통을 받아야 
아기가 생길까. 




'애도의 시간'은 아름답지 않다. 



난임기간이 길어지면서, 오랫동안 시험관 생활에 하다 보니 이 생활에 대해 온전히 감정을 나누는 사람은 오로지 '가족'뿐이었다. 남편과 친정엄마 그리고 여동생 정도였다. 


특히, 가장 내가 믿고 의지하는 상대는 '남편'이었다.  1년 반이 넘어가는 시험관 생활 속에서 항상 아름드리나무처럼 든든하게 나를 보듬어 주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도 감정적으로 힘들 텐데, 더 힘들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며 오직 내 걱정을 우선시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에게 참 고맙다. 


유산소식을 들은 당일날, 나는 남편의 품속에서 눈물을 쏟아내었다. 남편은 먹먹한 눈망울을 가지고 나를 깊이 안아주었다.


분노와 억울함이 몰아치던 나날들 속, 

아무도 내 마음은 절대 알지 못한다고,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 이기적인 마음이 커지게 되었다. 그 당시 나를 지키기 위한 '못된' 애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리 의지하는 남편조차, 그도 힘들 테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내 힘듦이 너무 깊은 나머지, 남편의 마음을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애도의 시간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남편과 나사이 '어떤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남편의 매우 친한 '절친' 한 명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았다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친구와 희로애락을 나누며 공감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친구에게 나의 '유산소식'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서운한 감정을 참을 수 없었고 남편에게 나의 비참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쏟아냈다. 


분노와 억울함에 대한 마음이 너무 깊어져 남편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고 그 일에 대해 매우 크게 화를 내었다.

남편은 나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였지만, 난 듣지 않았다. 내 감정만을 뱉어낼 뿐이었다. 

그 감정들은 수위를 넘어 상처를 주는 형태를 띠었다. 

남편 또한 내 말에 상처를 받고 며칠을 대화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우리는 애도의 시간 속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더 잔혹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출처: 핀터레스트 



당신과 나의 '애도'의 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눈물의 화해를 이룬 후, 나는 남편과 나의 각자 다른 '애도'의 방식을 존중하게 되었다.


내가 친정엄마, 남편에게 큰 위로를 받고 기대고 있듯이, 남편 또한 기댈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상황을 원했던 것 같다. 나의 아름드리 역할을 해오던 남편 역시 속으로는 울고 있었고, 위로를 받고 마음을 치유하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부정' '분노' '후회'등의 감정들을 보내고  긴 '슬픔'을 마주하고 있다. 


애도의 단계 중, '부정' '분노' '협상'(내가 뭘 했더라면~등의 후회와 비슷)을 2주 정도 보내고, 슬픔의 시간을 꽤 길게 보내야 마지막 단계인 '인정'이라는 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 슬픔의 시간을 크게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슬픔의 시간을 충분히 느껴야 슬픔을 잘 보내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잔잔한 슬픔이 나를 감싸고 우울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는 마음 상태가 펼쳐진다. 그럴 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며 시간을 천천히 보낸다. 

그러다가, 잔잔한 슬픔이 갑자기 소용돌이쳐 올 때가 있다. 그럴 땐 거부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속상해하는 시간도 마음껏 보낸다. 


남편 또한 하루하루 '남편만의'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애도가 나와는 조금 다를지라도, 천천히 '그'만의 방법으로 보낼 수 있게 마음껏 존중하고 공감해 주기로 했다. 


서로의 애도를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우리의 애도'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의 애도'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때, 슬픔의 시간이 지나고 잔잔하게 웃음을 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출처: 핀터레스트 





나와 같은 '유산'의 아픔을 겪은 모든 이들께,

각자의 삶 속, '당신만의 애도'의 시간을 존중하고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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