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유(화학적 유산)로 마무리된 5차 시험관 이야기
배아이관까지 잘 끝난 아기 배아 3형제, 이제 내겐 이식만 남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식일이 다가왔고 시험관 5번째 이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전원한 병원에서 진행한 첫 이식
벌써 이식이 5번째이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으로 전원한 병원에서 진행한 첫 이식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그만큼 기대도 컸고 잘될 거란 자신감도 들었다.
배아 이식을 진행할 때는 채취와 반대로 금식을 하지 않는다. 대신 병원오기 전 마지막 소변을 비우고, 물을 한 컵정도 마시고 오라고 한다. 방광에 소변이 차 있어야 이식할 때 초음파로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것이다.
남편과 인사를 하고 이식대기실 병동에 들어왔는데, 너무너무 소변이 급해서 기다릴 때, 땀이 쏙 났다. 하필 이때, 내 앞에 이식 대기자가 많은지라 나는 소변을 참은 채 기다려야 했고, 화장실도 못 갔고 수액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로 화장실이 너무 급했다. 엄마가 되는 길에는 다양한 고통이(?) 따르는 것 같다.
"ooo님, 이제 이식 들어가실게요"
내 차례가 되어 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이식시술실로 이동하였다. 어두운 시술실에는 모니터 화면이 띄어져 있었고, 난생처음 보는 이쁜 눈사람모양의 배아가 있었다. 괜스레 이식을 하기도 전에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귀엽고 예쁜 눈사람모양의 5일 배아였다.
시험관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기다리는 단어가 바로 '감자'와 '눈사람'이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난임병원 중 '감자와 눈사람'이라는 병원이름이 있을 정도이니까.
5일 배아는 보통, 착상직전의 배아 상태인데 분열상태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게 된다. 먼저, 배아를 둘러싼 투명대를 배아가 뚫고나 투명대와 붙어있는 경우 눈사람모양이어서, 눈사람배아라 부른다. 여기서 좀 더 진전이 되면 투명대를 완전히 뚫고 나와 부화가 완전히 끝난 동그란 모양의 배아가 '감자'를 닮아 감자배아라고 부른다.
나의 첫 번째 배아는 아주 이쁜 눈사람배아였다.
만나서 반가워, 나의 눈사람
침대에 누워 배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의사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자궁내막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하시면서 이식을 진행해 주셨다. 배아 이식을 진행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숨 막히는 기다림의 시간- 1차 피검까지 10일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식을 잘 마치고 돌아왔고, 남편과 맛있는 갈비탕을 점심으로 먹었다. 10일의 시간은 참 느리게 흘러갔다.
일단 이식을 한 당일에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수액을 맞았기 때문에, 몸살끼가 있는 것처럼 아파왔다. 5일 배양은 24시간 이내 바로 착상을 시작하기 때문에 지금 눈사람 배아가 고군분투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픈 건 그만큼 배아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증거겠거니 생각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처음 보는 임테기 두줄,
그리고 1차 피검 통과
이식한 지 6일 차쯤 되었을까, 갑자기 약간의 출혈이 있어서 생리가 시작된 건가. 또 실패인 건가 싶었다. 하지만 찾아보니 착상혈이라는 것도 있길래 희망을 가져보려 했다.
그리고 바로 해본 임테기.
결혼생활 5년 만에, 나의 시험관 생활 1년여 만에 첫 두줄을 보았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1차 피검을 앞두고 하루하루 두줄을 기록하면서도 두려웠다. 혹시 피검수치가 낮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어찌나 기다렸는지...
1차 피검사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8시에 채혈을 하고 낮 12시쯤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4시간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밥도 넘어가지 않았고, 오직 피검사 수치만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되자 피검사 결과를 받았고, 결과는 130이었다.
20이 넘으면 임신, 100이 넘으면 안정권인데 통과된 것이다!
시험관 5차 만에 첫 착상이었다.
기쁨도 잠시,
2,3차 피검 미통과
기뻐할 새도 잠시, 바로 3일 뒤 월요일에 2차 피검을 오라는 말씀을 들었다.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2차 피검은 1차 피검에 비해 2배의 수치가 오른 더블링이 잘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더블링이란 이틀에 약 2배인데, 정확히 말하면 1.66배만 오르면 안정적으로 잘 오르고 있는 것이다.
100이 넘은 안정권이었으니 당연하게 2차 피검도 넘을 수 있겠지, 하지만 잘될 수 있을까? 반반의 여러 가지 심정으로 주말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2차 피검을 통과하지 못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1차 피검수치가 안정적이어서 당연히 2차 피검도 무탈하게 잘 넘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80대로 수치가 떨어졌고 의사 선생님의 충격적인 말씀을 기다릴 수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하.. 1차 피검 수치가 좋아서 기대했는데 너무 아쉽네요.
3차 피검을 해볼 예정이긴 한데,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에는 사실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어요. 오히려 애매한 수치가 나와서 자궁 외 임신이 될 경우, 위험할 수 있으니, 차라리 수치가 뚝 떨어져서 화유로 (화학적 유산)으로 종결되는 것이 다음을 위해서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하루 만에 나는 피검사 수치가 떨어지길 바라는 상태가 되어야 했다.
화유로 5차 시험관 종결,
잘 가 나의 눈사람배아
3차 피검은 2차 피검 일주일 뒤였다. 그러나 3차 피검을 받기 전, 생리가 시작되었다. 나의 눈사람 배아가 이렇게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구나, 마음이 먹먹하고 아릿했다.
3차 피검 결과는 10 미만으로 뜨게 되어 화학적 유산, 화유로 종결되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온 나의 눈사람 배아는
다시 하늘의 별이 되었다.
화학적 유산이라. 이름만 들어도 슬펐다.
연기처럼 내 배아가 흐릿하게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상상되었다.
시험관 두줄이 떠도, 유지되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 느꼈다. 이 두줄을 유지하고 아가를 품에 안을 때까지 나는 얼마나 더 마음을 졸이고, 기다리고, 슬퍼해야 할까.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는 나에게 남편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 이번에 첫 착상을 했잖아. 이렇게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자"
그래, 한 단계씩 나아가자.
남편과 처음 시험관을 하고 실패한 날, 잠실호수를 바라보며 나누었던 말이 생각났다.
"저 호수처럼 잔잔하게 평온하게 물 흐르듯이 지내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항상 묵묵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
생리를 시작하고 3차 피검 수치를 통해 시험관 5차는 자연스레 종료되었다. 나는 나의 눈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시험관 6차를 향해 다시 나아가보려 한다.
잘 가, 나의 눈사람
잠시나마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