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었던 경험
학창 시절 체육 시간만큼은 난 항상 배려와 양보의 아이콘이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4명이 달리면 4등, 8명이 달리면 8등을 했고, 오래달리기에서는 몇 명이 함께 출발해도 항상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행여나 뒤처지는 사람이 있을까 봐 배려한다고 착각이 들 정도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른 집 부모들이 집에서 더하기 빼기를 가르칠 때 엄마는 나에게 고무줄 잘 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학교에서 또래끼리 하는 놀이에 잘 끼지 못하면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신 엄마의 특훈으로 매일 저녁 집 앞 공터에서 진행됐다. 큰 돌에 고무줄을 걸고 다른 한쪽은 엄마가 잡고 각종 고무줄놀이 동요에 맞춰 이리저리 뛰며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피아노 의자를 거실에 두고 뜀틀 뛰기를 연습해 어렵게 넘을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매일 점심, 저녁 식사 후 20~30분씩 연습해 6개월 만에 2단 줄넘기가 가능할 수 있었다. 체육 성적은 간신히 턱만 겨우 걸칠 정도의 성적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고 당연히 운동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몸으로 하는 어떤 활동이든 남들보다 3~4배 연습이 필요했던 나로서는 처음 해보는 운동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미스터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어 억지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운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수영, 등산, 인라인스케이트, 스키도 호기심으로 따라가 조금씩 해보게 되었다. 시험을 볼 필요도 경쟁할 필요도 없으니 운동은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특히 전문 강사에게 1대 1로 강습을 몇 번 받은 이후로는 수영은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한창 트레킹에 빠져 있었을 때는 북한산 둘레길 21코스도 완주했다. 홀로 한라산을 오르기도 하며 이제는 누가 시켜서 혹은 억지로 할 필요도 없이 혼자서 즐기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체육활동은 빠르게 혹은 강하게, 순발력과 경쟁을 요구하는 게 대부분이라 나에게는 신체적 한계와 더불어 심리적 부담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재미붙인 운동이라도 여전히 잘하는 건 아니라서 내 체력과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홀로 즐겁게 하는 정도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둔하디둔한 몸뚱아리라 생각했는데 내 몸도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서른이 넘어 동네 문화센터에서 처음 해본 매트 필라테스에서 잘한다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누구보다 빠르게 몸이 늘어나고 꼬이고 틀어졌다. 난 빠르거나 강하지는 않지만 참고 버티는 인내심은 누구보다 탁월했다.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요가원에 등록해 정식으로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관절은 물론 발목까지 굳어있어 동작만 겨우 따라 하다 이제는 호흡과 의식, 동작의 의미를 이해하고, 참고 버티는 것을 넘어 동작 안에서 호흡과 함께하며 깊은 평화를 느낀다. 무엇보다 지금껏 몸으로 하는 활동에는 늘 부러운 눈으로 지켜만 보던 입장이었는데 요가에서는 따로 연습할 필요없이 수업시간에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차이다.
지난주 요가의 아사나(동작) 중 난도가 높은 동작 중 하나인 시르사사나, 일명 물구나무서기를 시도했다.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깍지 낀 양손을 뒤통수를 받치고 의식을 집중해 천천히 발끝을 세워 조심스럽게 골반을 상체 쪽으로 끌어와 위로 뻗어본다. 뒤로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잠시 내려놓고 의식을 한곳에 집중해 호흡과 복근의 힘을 동시에 써서 다리를 쭉 뻗어 올려야 한다.
요가원 수련장 안에는 거울이 없다. 동작을 잘못하면 선생님이 교정해 주니 굳이 내 모습을 볼 필요도 옆 사람과 비교할 이유도 없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서 하면 그만이다. 힘을 잔뜩 주고 아사나를 시도하지만 아사나가 완성된 순간부터는 힘을 빼고 호흡을 해야 한다. 한계 넘어 하지 말 것, 용을 쓰며 억지로 하지 말 것. 내 몸 상태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남들만큼 하기 위해 피땀 눈물을 흘리며 했던 운동이었는데 요가에서는 육체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한계 넘어서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운동으로 시작했던 요가였지만 어느새 삶을 대하는 태도와 좋은 습관을 배우는 수련이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신체활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자신감이 내 안의 깊은 어딘가에서 솟아오른다. 왜 학창 시절 운동 잘하던 아이들이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다.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 지남철(指南鐵) 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겼던게 아닐까 싶다.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나는 더 건강하고 내 몸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다. 산에 갔다 오는 날은 몇일 오른쪽 무릎이 시끈거리지만 어떻게 하면 다시 좋아질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완벽하진 않지만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익혀간다.
요가매트 안에서만큼 난 최고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