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설교통역인가'
가끔 나는 내 스스로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지 생각해보곤 한다.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이 너무 설레서 저질러 버리곤 한다.
꿈이 있는 건 좋다.
하지만, 그 꿈을 상상하는 건 재밌고 설레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은 노력과 인내의 고통들이 뒤따른다.
왜 설교통역인가.
가끔 설교통역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다가 현타가 오곤 한다.
사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고 전문 통역사도 계시고 해외에서 오래도록 신학을 공부하거나 사역하고 국내에 들어오신 목회자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도 계시는데 왜 나는 '감히 내가 설교통역을 하려고 소망을 품었을까?'라는 현실적 의문점들이 몰려오곤 한다.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너무나 많은 공부를 해왔고 직장에 정규직으로 안정기만 들어서면 이제 내 인생에 공부는 그만이다! 라고 다짐하며 그 시간들을 인내했었다.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 책을 펴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이런 과정들을 질릴 정도로 숱하게 해왔기에 나는 이제 공부에 대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아니,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왜 지금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
'사실 안하면 그만이지 않나?'라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본 사역을 통해 물질적인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사실 설교통역을 듣는 외국인 숫자도 10명도 되지 않는 소수이다. 설이나 명절 등의 기간엔 외국인 분들이 한 분도 없으신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구지 안해도 될 일이지 않을까.'
'어차피 적은 숫자고 내가 하는 것에 큰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한걸까?'
온갖 생각의 핑계들이 생기면서 언제까지 하지? 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내 결심에 대한 '이유(Reason)'를 생각해본다.
'내가 왜 설교통역을 하고 있지?'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지?'
항상 심각한 마음으로 고민을 시작하지만 신기하게도 오히려 고민 끝의 답은 매번 선명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님이 나의 청년의 시절 꿈을 주셨고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많은 경험을 통로로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비전'을 통해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이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다는 것.
그래서 나도 이 달란트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
나도 받기만 하는 사랑이 아닌 내가 '주는 사랑(Giving Love)'이 되고 싶은 것.
그리고 수도권엔 통역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진 몰라도 내가 사는 지역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내 작은 능력도 타국에 와서 설교를 듣고 싶은 마음이 있는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이 이유들이 내 소망을 붙들게 도와주었다.
그래도 힘들때면 가족들에게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그때마다 그들이 해준 말들로부터 큰 힘을 얻는다.
'그거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우린 하고 싶어도 못해~'
'어려운 만큼 특별하고 멋있는 봉사라고 생각해!'
'누군가는 너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거잖아!'
이 사역은 내 커리어를 위함도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을 훈련시키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나는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며 다시 붙잡는다.
'하나님, 내가 이 사역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는
그 순간순간이 모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사랑은 힘듦과 괴로움을 즐거이 견디게 하는 힘이기에.
내가 즐겁게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게 해주세요.'